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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Aug 12. 2023

즐긴다는 것

천천히 관찰하기 

주말 미술 클래스를 등록했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한 학원에는 이미 다른 수강생들이 이젤 앞에 자리 잡고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들어선 나를 발견하곤 다들 "안녕하세요!"하고 맞이해 주셨다. 


강사님은 학생들 사이사이를 돌아가며 그림을 봐주시고 계셨다.

주말 이른 오전 성인반인 미술 학원에는 나를 포함해 5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다들 수강하신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은둔 고수들로 연필 소묘를 하는 분도 계시고, 풍경 수채화를 그리는 분, 정물 유화를 그리는 분 등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스스로의 학원비를 내는 성인들이라 그런 것일까? 다들 열정이 넘쳐 보였다.


어색한 인사를 마친 후, 강사님은 이젤의 높이를 조작하는 방법과 그림의 형태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모양 자체를 인식하지 말고 어둠과 빛만으로 형태를 잡는 방법이었다. 그리곤  연습용으로 보고 그릴 그림을 가져다주셨다. 

이젤 앞에 어색하게 앉아 연필을 잡고 쓱 쓱 스케치북 위에 선을 그린다. 

혼자 그림 앞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귀가 열렸다. 

강사님이 틀어놓은 팝송 사이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이 부분에는 흰색을 좀 더 써야겠죠?"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이 부분 명암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와 같은 미술적인 조언을 구하는 이야기부터,


"다음번엔 정말 유럽에 가서 풍경을 그려보고 싶어요. 실물을 눈에 담으면 훨씬 좋은 그림이 그려지겠죠?"

"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일본 여행을 갔는데 말이죠, 제가 물감 좀 사 오라고 했다니까요! 오호호호! 그럴 때 쟁여놔야 해!" 

하고 잡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뜻 수다스러운 이 분위기가 정겨워 귀를 열어둔 채 그림을 그리던 와중,

"빨리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지더라고요." 하는 수강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은 특유의 천천한 말투로 "아유, 급할게 뭐가 있으세요. 즐기면서 하세요. 즐기면서. 즐긴다는 게 뭔지 아세요? 즐긴다는 건 잘 관찰한다는 거예요. 유심히 관찰하고, 음미하고, 여유를 가지세요." 라며 학생의 그림을 수정해 주셨다. 


즐긴다는 것은 천천히 관찰한다는 것.

빠르게 연필로 선을 긋던 내 손의 리듬도 늦추게 만드는 말이었다. 


주변에서부터 "즐기면서 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는데, 

즐긴다는 건 관찰한다는 거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새로운 배움은 언제나 즐겁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관찰하다 보면

나만의 즐거움을 찾게 될지도.


클래스 첫날부터 배워가는 게 있다니!

벌써부터 알차다.

주말이 손꼽아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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