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놀 일을 미루지 말자
아주 오래전 첫 직장에서 팀을 옮겼던 적이 있다.
모든 조율이 다 끝나고 발령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동하게 될 팀에서 플레이샵을 간다고 같이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아직 발령도 나지 않았고, 현재 팀원분들도 지켜보고 있고, 남은 일도 있으니 못 갈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이동하게 될 팀의 팀장님이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생각하면 같이 즐겁게 놀았던 일이 생각날까? 지금 해야 했던 일이 생각날까? “
물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기존 팀에서 잔업하는 것을 택했다.
후회하느냐고?
조금은 그렇다.
그 후로 바로 발령이 나서 팀장님이 몇 년 동안 플레이샵에 못 갔던 얘기를 했기 때문인 것도 있는데(뒤끝이 있는 스타일이셨던가…),
정말로 팀장님의 말씀처럼 당시에 내가 어떤 일 때문에 기존 팀에 남아 잔업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플레이샵뿐만이 아니라, 돌아보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사건은 성과나 업무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셨던 일들이다.
야근하고 문 닫기 직전에 편의점에서 들러 맥주 한 캔 씩 마신 후 퇴근했던 일이나, 엄청나게 맛있는 샴페인을 처음으로 마셔본 일, 야근밥을 먹으며 위로를 나누었던 일, 회식 자리에서의 에피소드 같은 것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분위기와 웃음, 감정만은 어떤 업무 성과보다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은 중요하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알쓰지만 가끔은 술자리를 갖는 이유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시간을 보내며 좋은 감정을 느끼고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
직장인들과 저녁 약속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그런 의미로 지난달에는 열심히 약속을 잡고 추억을 만들러 다녔다.
저녁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 이번 모임은 ‘개기자’ 모임.
누구한테 개기자는 건 아니고, 개발자와 기획자의 모임이라 줄여서 ‘개기자’가 되었다.
(모임원은 종종 바뀌지만 내가 만나는 모임은 대체로 ’ 개기자 ‘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무려 두 달 전부터 잡아둔 직장인스러운 계획적인 만남이다.
4명이나 되기 때문에 와인을 병으로 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파스타에 와인이라니. 이것 참 근사하군.
누군가 가고 싶었던 오뎅바에 예약을 걸어두고 자리를 옮겨 맥주와 와인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주제는 일, 재테크, 개인사 등등 다양한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디오가 비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예약해 둔 오뎅바에 입성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짠!
분위기 좋고, 술맛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사는 이야기를 듣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고 놀리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즐거웠던 감정은 오래갈 것 같다.
해가 바뀌기 전에 한번 더 모임을 잡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