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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Oct 24. 2023

특기는 CCTV 보기

일 잘하는 경찰의 노하우


“특기가 CCTV 보는 거라고?”

우물우물 점심 메뉴를 입 안에 가득 넣은 채 내가 물었다.


“경찰들은 특기도 참 경찰스럽다, 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기야. “

내가 웃으며 덧붙이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주주가 웃는다. “보통의 사람이 특기로 적으면 그거는 이상한 거지.” 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주주.


“그런데 도대체 CCTV를 잘 본다는 건 뭐야? CCTV를 특출 나게 잘 보는 그런 비법이 있는 거야? “

자기소개서에 특기로 적을만한 것이라면 분명 특별한 비밀 노하우가 있는 게 틀림없다.

내가 물어보자 주주가 뜸을 들인다.

“궁금해?”

“응! 궁금해! 알려줘! CCTV 볼 일은 없겠지만 궁금하다!”


“비법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하려는 주주를 응시한다.

“비법은 배속하지 않고, 원래 속도로 차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거야. 배속을 하게 되면 놓치는 부분이 있거든. “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범한 대답 같아서 다소 실망.

“뭐야, 그게ㅋㅋㅋ 그 정도로 특기라고 적어도 되는 거야? 너무 기본 같은데?! “


“그럴 것 같지? 근데 이게 기본인데, 이게 너무 지루하단 말이지? 그래서 배속을 해서 보는 경우가 되게 많아. 차분히 정속으로 보는 게 쉽지가 않아. 원래 기본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거든. 특별하지 않아 보여도, 너무 기본 같아 보여도 실행으로 옮기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 “

주주의 설명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특별함이 된다는 그녀의 설명은 뭔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말처럼 느껴졌다.


특기를 펼치는 중



생각해 보니 뭐든 그런 것 같다.


살 빼는 법을 모르지 않는다. 적게 먹고, 운동 많이 하고, 6시 이후로 금식을 하면 살은 빠진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흠…)


화 안내는 법을 모르지 않는다. 침착한 마음을 갖고,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욕심을 내려놓는다. 심호흡을 하고, 다른 각도로 사건을 본다. 실제로 내가 화를 안 내느냐고? (그럴 리가.)


언제나 진리는 심플하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행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그렇게 생각하니 기본적인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주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CCTV를 잘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통쾌함이 있다는 부연설명을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야, 그렇게 말하니까 쫌 멋지다?”

직장 생활 연차가 늘어가는 것과 비례해서 멋진 진리도 깨우치고 있는 듯한 주주. 참 멋진 직장인 여성이다.


경찰이라는 조직이 워낙 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일까, 사명감 있는 직업이라 그런가, 주주의 생각의 깊이는 일반 직장인인 나와는 다른 듯하다.


통찰력이 있는 그녀.

점심시간에 짧게 만나지만 그 찰나의 시간에 한 대화에서 얻어가는 게 많다.


나도 누군가가 기획자로서 특기를 물어봤을 때, 멋진 답변을 할 수 있는 비법이 있으려나..?

예를 들면…. ‘공유 잘하는 법이요? 후후후. 그건 바로, 담당자에게 직접, 즉시 얘기하는 것이지요!’

흠… …… 아무래도 나는 멀었다.


기획자로서 나의 특기,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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