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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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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Nov 03. 2023

지옥에서 칭찬받으면

일 잘하는 악마

친구들과 단톡방이 여러 개 있다. 친구들 대부분은 직장인이라 주로 회사 욕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한 친구가 서러움을 토했다.


같은 팀에 은근히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직원이 있는데 자신보다 직급이 높아 자신도 해당 직원의 업무 지시를 받는 상황이라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은근히 비윤리적인 행동'이란 외주사 직원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회사 지침을 어기라는 듯 농담 삼아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 외주사 직원에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당한 것은 아닌 데다(신고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윤리적이지 않거나 비도덕적인 내용을 말할 때는 농담 섞인 어조라 '농담이었어요~' 하면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제각각 한 마디씩 보탰다.

누구는 증거를 모아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화를 냈으며,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있었다.


힘들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나도 예전에 힘들었던 회사 생활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도 때로는 지치고 힘든 때가 있다. 힘들지 않은 회사 생활이 어디 있겠냐만,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는 정말 암흑과도 같은 시기를 보냈다.


나는 첫 사회생활을 90%가 남성으로 이루어진 남초 조직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일을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어울리고 싶었고, 그들의 세계에 끼고 싶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경청했으며, 야근을 자처했고, 회식에도 빠지는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담배를 피우지 않음에도 조직장들이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편의점을 간다는 핑계로 따라나서기도 하고, 심각하게 담배를 배워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회사 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골프를 배워야 한다기에 주말에는 골프 레슨을 받기도 했다. "아, 여직원들은 오래 못해. 이 판은 남자들의 판이야. 어차피 결혼하고 애 낳으면 다 떠날 애들이잖아, 하하하."라는 말에 아무런 변론도 하지 않았다. 그정도로 나는 절실했다.


다행인 건, 해당 조직에 있으면서 내가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해당 조직에 스며들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당시의 조직에 잘 적응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튕겨져 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어떤 것을 바라고 그 세계에 끼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이라 사리분별을 못하기도 했고, 안타깝지만 좋은 어른들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과거의 나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지옥에서 칭찬받아봤자 착실한 악마가 되는 것뿐이야.


채팅방에서 울분을 토하던 친구는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 친구는 비도적적인 일에 분개했고 사리분별을 잘하고 있다. 그러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직원의 행동이 일반적인 행동으로 퍼지는 순간이 온다면... 친구에게 다른 길을 찾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팀마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부정한 일이 주류가 되는 순간, 개인이 판을 뒤집는 일은... 투사가 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같은 악마가 되기 전에 떠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윗 세대가 저지른 부정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동류가 되어 지옥을 넓히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친구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면서,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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