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회사생각

월요일 알레르기

월요일 D-1일

by 피넛

일요일 아침 11시.

길동이가 아침을 차렸다며 먹고 자라며(?) 깨워서 겨우 눈을 떴다.

평일에는 출근 때문에 8시 전에는 일어나고,

토요일도 오전에 미술학원을 가야 하니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일요일만큼은 눈이 쉽사리 떠지지 않는다.


천근만근 떠지지 않는 눈으로 길동이가 차려준 콩나물국의 국물을 조금 떠먹은 후 멍~ 때리고 있으니 다시 가서 자라고 등을 떠미는 길동이.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콩나물국을 일찍부터 준비해 줘서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내 몸은 비몽사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침대로 향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잠시 뒤 눈을 떠보니 오후 2시.

핸드폰을 보니 길동이는 미용실을 다녀온다며 콩나물국에 계란을 넣고 콩나물국밥을 먹으라는 카톡이 와있었다.

약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콩나물국이 담긴 냄비에 불을 올렸다.

길동이의 지시대로 콩나물국에 계란과 밥을 넣고 콩나물국밥을 만들어 후루룩 마셔버렸다.

따뜻하고 든든한 맛.

며칠 전 동네를 돌아다니다 오픈 예정인 콩나물국밥집을 보곤 스쳐 지나가는 말로 '콩나물국밥 먹고싶다.'고 했던 내 말을 놓치지 않고 기억해 둔 길동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도 잠시,

배부른 상태에서 책을 집어 들었더니 급속도로 또 잠이 몰려온다.

어쩌지, 잠을 쫓아볼까 아니면 몸이 이끄는 대로 다시 누워볼까... 고민을 하던 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소파 위에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 이렇게 또 잠이 들었다.


잠시 눈을 떠보니 머리를 자르러 간 길동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집 안이 조용하다.

몇 분 안 지났나? 하고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6시. 꽤 자버렸다.

잠깐 핸드폰을 열어 빈둥빈둥 릴스와 유튜브 숏츠를 보고 있으니 길동이가 귀가했다.

돌아온 길동이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스윽 쳐다보더니 "계속 잤니...?" 하고 묻는다.

"응. 오늘따라 잠이 잘 오네. 밀린 잠 충전이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좀 걸을래? 오늘 한 번도 안 나갔지?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그러고 보니 일요일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쓰레기도 버릴 겸 잠깐 바깥바람을 쐬기로 했다.


"이제는 저녁에는 선선하네."

"선선하지."

길동이는 꼭 내가 한 말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 왜 이렇게 잔 거니? 몸이 안 좋아?" 길동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가끔씩 주말에 이러는 것 같아. 몸이 딱히 어디가 안 좋은 건 아닌데. 그냥 기력이 없네." 나는 종종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날이 있다.


"그냥 피곤했나 싶기도 하고..."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유추를 해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봤는데,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잠을 많이 자게 된대. 나도 뭔가에 도망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름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봤다.

"도망? 그거 혹시 월요일? 출근?"

"헉?! 맞는 것 같다. 나 출근하기 싫어서 이러나 봐."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다 정답을 찾아버렸다.

일요일만 되면 무기력증이 나타나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는데 그 원인은 바로 월요일이었다. 스스로 자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 것이다.

나는 이것을 '월요일 알레르기'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월요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이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니까 말이다.


희한한 것은 그렇게 자고 나니(저렇게 자고 나서도 산책 후에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이 가뿐했다. 온 힘을 다해 반응하고 나니 이제 더 나올 반응이 없기 때문일까? 푹 자서 피로가 풀렸기 때문일까? (허리는 좀 아팠지만) 서서 가는 버스에서도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정신이 또렷했다.


마냥 잠을 잘 때는 무기력증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증상의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 내가 월요일 때문에 이렇게 기력이 없었구나. 월요일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잠을 잤던 거구나.' 이제는 마냥 기력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왠지 큰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회사원의 삶이 다 그런 거지!'


가끔은 이렇게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는 일들이 있다.

강한 정신으로 신체를 지배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몸이 시키는 대로 육체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일요일에 하려던 일들을 다 하지는 못했어도, 어느 때보다도 개운한 월요일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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