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세계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마주치기 어려운 존재를 꼽으라면 바로 '어린이'다.
마주치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어린이를 떠올릴 일은 적은데, 어린이를 타겟으로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면 대체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는 서비스는 만 14세 이상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 14세'라는 기준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줄여서 '정통망법'이라고도 한다) 제31조에 규정된 내용을 근거로 한다. 만 14세 미만의 아동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해서 절차가 길어지고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온갖 규제를 적용하고,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를 별도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 전용 서비스가 아닌 한, 만 14세 이상만 가입하도록 정해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미혼인 경우에는 회사에서 어린이를 마주치거나 떠올릴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우연히 집어든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에세이 책은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이 쓴 책인데, 나와는 달리 매일 아이들을 대하며 벌어진 사건과 생각이 담겨있어 흥미로웠다.
내가 만난 적 없는 어린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어린이들을 지켜보는 어른의 이야기는 어째서 이렇게 나의 마음을 울렸을까. 내 주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어린이(조카) 때문일까, 아니면 나 역시도 언젠가 어린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독서교실의 선생님의 따스한 시선 외에도 이 책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을 마주하는 이야기 또한 담겨있는데, 불합리한 일을 떠올리며 저자가 한 말이 나에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회사 일을 하면서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그런 일을 마주하면 나는 너무 포기하고 싶고, 누군가가 나타나 해결해 줬으면 좋겠고, 모른 척하고 싶고, 눈을 감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인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서 이런 어른들이 나타나 나를 꾸짖는다. 절망하지 말라고. 쉬운 길 가지 말라고. 어려운 길을 가라고 말한다.
책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를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느 때처럼 힘든 일 앞에서 멍-하니 좌절을 하고 있을 때면 마치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채팅 알림이 울린다. 덕담으로 시작한 이 채팅은 하소연으로 이어지다 결국엔 이렇게 끝난다.
결국 우리가 잘하는 수밖에 없지.
이것은 체념이나 절망이 아니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억울한 일이 있어도 결국 감당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다시 각자 서로의 어려운 길을 향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절망의 길에 주저앉지 않고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나의 세계,
지치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어른들이 있는 세계,
어린이의 세계 못지않게 따뜻하다.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어른도 자란다.
쉬운 길을 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