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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회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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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Dec 11. 2023

그 시절, 우리가 담당했던 서비스

서비스의 흥망성쇠

두 달 전 약속을 잡아둔 전 직장 동료들과 드디어 만났다.


"아니, 근데 이 조합은 뭔가요오?"

전 직장 동료분들이 물어온다. 두 달 전부터 궁금했을 텐데 엄청난 인내심의 그녀들이다.


"기획자 모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랬다. 이 모임은 전 직장 기획자 동료들 모임이었다. 구 회사의 기획자 모임(일명 ‘구기자’ 모임)인 셈이었다.


"윽, 기획자라니! 기획자라는 말 진짜 싫어어어~"

징글맞다는 듯 외치는 한 동료의 말에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퇴근 후에도 기획자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기획자라는 명칭 아래 벌어지는 애매한 업무 영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샐러드와 나초, 부리또를 안주 삼아 맥주와 콜라를 마시며 우리는 일상 이야기를 비롯해 연애, 재테크, 회사 얘기를 나누었다.

바삭한 나초에 아삭한 야채, 달달 짭짤한 소스들이 잘 어울려져 자꾸 맥주에 손이 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돌고 돌아 회사이야기로 돌아온다.


“아 맞다. 피넛님이 예전에 담당했던 서비스는 이제 종료되었어요.”

“오, 그랬군요. “


“그리고 저희 예전부터 준비하던 그 프로젝트는 드디어 배포되었답니다! 와! 진짜 길었다!”

“와, 고생하셨어요!”


퇴사한 이후로 예전처럼 서비스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아 모르고 있던 소식이었다.


어떤 기능들은 소멸하고,

또 어떤 기능들은 계속해서 고도화된다.

지금은 내 시야에서 멀어졌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서비스는 계속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열과 성을 다해 구축했던 기능의 종료 소식을 들으니 싱숭생숭한 마음과 함께 과거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치열하게 논의하고 매주 데이터를 보던 때가 있었는데. 내 과거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느낌에 패배감도 들고, 서비스의 시작만 보고 끝을 맺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재직할 때 조금 더 챙겼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서비스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고 의식해서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밝은 측면을 떠올려야 한다.


그 시절 우리가 담당했던 서비스는 반짝반짝 빛났고 이제는 수명을 다해 빛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탄생할 서비스는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은 과거는 경험으로 승화되니까, 어쩌면 가치 있는 소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장기간 진행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났다는 얘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한 동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맘고생, 몸고생 다 했을 텐데.

고생한 만큼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2차로 카페에 들러 차 한잔씩을 더 마시고 귀가했다. 구기자 모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함께했던 서비스가 흥망성쇠의 순환을 겪고 있는 것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자니 또 새로웠다.

이제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는데도 아직도 이렇게나 통하는 얘기가 많다니 놀랍기도 하고. 직군과 업무 카테고리가 비슷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왕이면 나를 거쳐간 회사가 흥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상 그게 나의 이력서에 도움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 함께했던 동료들이 만들어가는 것들이 좋은 결과를 내서 다들 하루라도 더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떠났지만, 남아있는 동료들, 나를 거쳐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서비스의 뒤에서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서비스가 생성과 소멸, 확장을 거듭해 가듯 사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내가 담당했던 서비스는 막을 내렸지만, 또 다른 서비스는 소생과 확장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 더 성장할 것이고.


나도, 조금은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오랜만에 들이킨 알코올과 카페인에 감성적이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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