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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의 알려지지 않은 23가지 이야기

공포가 태어나는 곳

by 피넛

아침저녁으로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시원해졌다. 한낮에는 아직까지 덥지만, 이게 어디람.


옛날에는 여름이면 무조건 무서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곤 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에어컨이 어디에나 있는 시절이 아니었어서 공포영화를 보면서 생기는 오싹함으로 잠시나마 서늘한 기분을 느끼려는 지혜였다.

요즘에는 ‘여름=공포’라는 수식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나 혼자서라도 공포를 맛볼 요량으로 이토 준지의 책을 읽어봤다.

이토 준지의 ‘불쾌한 구멍-공포가 태어나는 곳‘.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이토 준지의 에세이와 그가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법에 대한 책이었다.

오싹하고 그로테스크할 것 같은 제목에 비해 이토 준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그의 만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어서 ‘이렇게 제목으로 낚아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도 중간중간 기묘한 삽화들이 있어 나름 재밌게 읽었다.


이왕 읽은 것, 이토 준지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들을 뽑아 정리해 두었다.

이토 준지에 관한 23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1. 이토 준지는 어렸을 때부터 호러 만화를 좋아했다. 6살 때 누나들에게 “저주받은 건물”이라는 책을 선물 받고 기뻐했다.


2. 만화를 좋아하고 꾸준히 그려왔지만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치과 기공사가 되려고 했다.


3. 실제로 치과 기공사와 만화 그리는 일을 3년간 병행했다.


4. 치과 기공사를 일을 할 때에 ‘작품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일했기 때문에 효율이 나지 않았다.


5. 치과 일을 하면서 몸무게가 50kg까지 줄었고 마흔 살쯤 죽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6.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7. 일본의 첫 호러 오컬트 만화 잡지에 응모하기 위해 ‘토미에’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8. ‘토미에’는 도마뱀의 꼬리가 잘려도 원래대로 자라나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9. 아이디어 노트에 웃긴 소재를 많이 저장하고 있어서 (호러 장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그를 끼워 넣고 싶어 한다.


10. 토미에를 해체하던 선생님과 남학생들이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개그의 연장으로 넣었다.


11. 이상한 상황에서 일상적인 대사가 나와서 생기는 재미를 좋아한다.


12. ‘소용돌이’를 그릴 때 편집부에서 “주인공이 위험한 일을 겪어야 독자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다.” 고 하는 바람에 매번 죽어야 하는 서브 주인공을 살려야 해서 골치가 아팠다.


13. 편집부의 요청으로 고문 장면을 그렸는데 의외로 그로테스크하지 않아서 “이토 씨, 항상 이상한 만화만 그리니까 틀림없이 엄청난 변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식적인 사람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14. 호러 만화 창작법에 대한 글을 썼지만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읽고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


15. 유령이나 심령 현상을 경험한 적은 없다.


16. 주로 마을 풍경이나 건물, 동물, 자연, 우주, 꿈같은 것들에서 소재를 얻는다.


17. 가장 무서운 것은 ‘나(인간)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18. 유령, 요괴, 악마, 괴물 같은 초자연적 존재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19. ‘자기애가 이상할 정도로 강한 인간‘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무섭다.


20. 장편 만화가 어렵다. (주인공이 매번 같으면 개연성이 떨어지므로 장편 그리기가 어려움)


21.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에 애정이 없다. ‘세계관’ 만드는 게 더 즐거운 편.


22. 그가 그린 만화의 주인공은 성장하지 않는다. (공포를 극복해 버리면 더 이상 호러 만화가 아니게 된다)


23. 시간만 있다면 두 달 정도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그리고 싶다.




기괴한 그의 만화와 달리 보통의 사람, 직장인과 같은 면모가 담겨 이토 준지에 대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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