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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Jan 07. 2024

침대가 없는 삶

토퍼와 이불이 있는 삶

“이봐, 주말은 끝났어. 네 방으로 돌아가라. “

길동이가 거실에 깔아 둔 내 이불 끝에 서서 마치 죄수에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교도관처럼 말했다.


죄수는 아니지만 짧은 자유의 시간을 갖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야 하는 마음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거실에 깔아 둔 이불을 방으로 옮기면서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이번 주말도 끝났구나…


나는 침대가 없다.

현대인이 어떻게 침대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의외로 살아보니 토퍼와 이불만으로도 충분했다.


침대가 없어서 좋은 점은,

자고 싶은 곳을 옮겨 다니며 잘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도 이불을 잘 개어서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데, 내가 해보니 보통은 이불을 펴둔 채로 살게 되었다. 이건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이동식 침실


이동식 침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불의 삶.

이불의 장점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주말이면 이불을 거실에 펴고 자기도 한다.


주말 저녁에 거실 한쪽 벽에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틀어놓고 과자와 팝콘을 먹는 ‘무비나잇’을 여는데,

영화관에서 누릴 수 없는 ‘누워서 영화 보기’ 신공을 펼칠 수도 있다.


이불 아래 전기장판을 켜놓으면 금상첨화.

뜨뜻한 이불 안에서 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뒹굴거리는데 나의 주말 모습이다.


좋다.. 이런 호사스러움.

잠자리를 바꾼 것뿐인데 왠지 유목민이 된 것 같은 설렘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불을 옮길 곳의 바닥을 쓸고 닦고… 집순이지만 이불을 가지고 옮겨 다니느라 집에서도 늘 바쁘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도 별로 동하지 않더라니…

이불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자니, 마치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직장인의 숙명 상, 거주지 계약 상, 현대인의 보편적인 삶이 그러하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불 한 채만 있으면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흉내를 내볼 수 있다. 마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평일이 되면 다시 방으로 돌아가긴 하지만..

어딜 가지 않더라도 새로운 잠자리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이 되는 것.

아주 가성비 좋은 이불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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