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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Apr 10. 2023

나는 누군가의 파우릭

이니셰린의 밴시 후기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말에 본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가 일상을 보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절친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이니셰린의 밴시.

인생의 목표가 생겨 더 이상 놀고 마실 수 만은 없어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콜름.

난데없이 절교를 당해버린 파우릭은 콜름을 이해할 수 없어 관계를 회복해보려 하지만, 콜름은 귀찮게 하면 바이올린을 키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겠다 협박하며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결국 말을 거는 파우릭.

콜름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에 던져버린다.


외딴섬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바꾸기 위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콜름을 파우릭을 절단해 버린다.


코미디 카테고리라고 하기엔 시원하게 웃을 수 없었던 영화.

어째서인지 찝찝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콜름이 조금 더 자세하게 이유를 말해줬더라면 파우릭이 이해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관계를 끊어내려는 이유가 뭐야?!’, ‘손가락을 자르면 위대한 곡을 남기겠다는 꿈에서도 멀어지는 거 아니야?’, ‘바보 같은 파우릭. 왜 이렇게 콜름에게 집착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자친구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파우릭이 퍽이나 이해하겠다. 그렇게까지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거야.”라고 콜름을 지지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왠지 울컥해서

“아니 말로 잘 설득하면 되지, 손가락까지 자를 건 뭐야! 정말 이상해! “

하고 외쳤다.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지기만 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네이버에 영화를 검색해 봤는데…

이런 후기가 있었다.



이 후기를 보자 깨달았다.

내 찝찝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나는 파우릭이었다.

어쩐지 콜름보다 파우릭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니!


누군가가 목표를 향해, 꿈을 향해 달려갈 때 동반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

나는 나의 평온한 하루가, 꿈을 향한 열정보다 더 중요한 사람.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며 다섯 손가락을 모두 자를 정도의 의지를, 기존의 관계를 끊어내는 그런 아픔을 겪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콜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바보 같은 술이나 마시고 수다를 떨고 농담이나 해대며,

손가락을 자르는 결의를 보고서도 일상과 관계가 더 중요했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한심한 파우릭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손가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끊어내고 나아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를 보면 콜름과 파우릭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각자 보는 세상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파멸이 지금은 보인다.


누군가 그랬다. 관계는 핑퐁이라고.

누구 하나가 퐁을 해주지 않으면 게임은 끝난다.

왠지 내가 하던 수많은 핑퐁들이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저릿해오는 기분이 든다.


관계의 허무함에 대해서,

스스로의 짧은 시야와 한심함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한동안은 이 기분을 떨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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