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천궁에서 나를 빌었다

순간의 간절함은 어쩌면 내일로 이끄는 힘

by 유니로그

타이베이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조용히 숨 쉴 수 있는 공간.

나는 그곳에서 수없이 나를 빌었다.


행천궁은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중 하나다.
‘의리와 재물’을 관장하는 관우 신을 모셔서

사업가, 직장인, 학생들이 시험·승진·재물운을 기원하러 찾는다.

특히 종이돈을 태우지 않고, 향만 피워 기도하는 방식이 이곳만의 특징이다.


내가 이곳을 좋아한 이유는 단순했다.
타이베이 중심에 있지만 늘 고요했고, 건물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유명 관광지인 용산사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니던 네일샵이 바로 옆에 있었고,

내가 몸담던 여행사와 무역회사도 같은 ‘중산’에 있었기에 자연스레 자주 들르게 되었다.


또한 내가 살던 집 현관 앞에도 작은 제단이 있어, 관우신을 매일 마주했다.

대만은 국민 다수가 도교를 믿는 나라라 동네마다 신을 모신 사당이 있고,

가정마다 제단을 갖춘 집이 많았다.


‘신과 함께 산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도교는 대만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스며 있었다.


나 역시 투어를 나설 땐 “이번에도 무사히 잘 다녀오게 해 주세요” 하고,
투어를 마치고 돌아올 땐 “사고 없이 건강히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투어 중 큰일이 벌어졌다.


지우펀 주차장에서 손님들을 내려 화장실에 들러 보낸 사이,

관광국 조끼를 입은 직원이 버스에 올라탔다.


다짜고짜 내민 문서, 그리고 재촉하는 “사인하라”는 말.
한자로 가득한 계약서 같은 서류였지만, 읽어볼 겨를도 없었다.


기사님께 눈짓으로 물었으나, 그는 관광국 직원 눈치를 보며 “나도 잘 모른다”는 말만 했다.
손님들의 불안한 시선과 직원의 압박 속에 나는 결국 홀린 듯 사인했다.


며칠 뒤, 사무실로 날아든 것은 400만 원에 달하는 벌금 고지서였다.


그 순간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제 잘리는 건 아닐까? 대만에서 추방당하는 건 아닐까?”

벌금 통보 이후, 투어가 없는 날이면 나는 매일같이 행천궁을 찾았다.


관우 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읊조렸다.
“제가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매일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나는 대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이드라는 직업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되뇌며 빌고 또 빌었다.


다행히도 벌금은 회사에서 대신 내주었고,

나는 가이드로서 다시 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회사에 마음의 빚이 생겼고,

한동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혀 손님들에게조차 불편한 마음이 비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돈을 좇지 않고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려 할 때, 오히려 수입도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행천궁과 집안에 모신 관우 신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지금도 힘들고 불안할 때면 행천궁 사진을 핸드폰 배경으로 해두곤 한다.


매일같이 나의 안전과 돈벌이를 빌던 행천궁은

지금의 나에겐 청춘의 마음 울타리로 남아 있다.


나는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절에 가서 마음을 빌 때마다, 소란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빌어보는 행위 자체가 내겐 정신 수양이 되었고,

그 순간의 간절함이 나를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 되었다.


가끔 마음이 소란할 때면 다시 떠올려본다.
타이베이 행천궁 앞에서, 청춘의 나를 구해달라며 두 손 모았던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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