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이 없어진, 엄마로 남겨진 나에게
“회사는 무료한 일이다.
시간과 돈을 맞바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고,
내 시간도 눈치를 보며 써야 하며,
소속감이 있음에도 늘 불안에 떨며 출퇴근을 찍는 일이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의 일부다.
당시 나는 첫 직장을 다니다
대만 워킹홀리데이를 1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그 직장에 새 보직으로 복직한 후
한 달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던 때였다.
회사를 옮기면, 직무가 바뀌면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회사원은 어디를 가도
비슷하구나 싶어
'회사는 무료한 것'이라는 문장을 남겼더랬다.
그 후 나는 다시 대만행을 택했다.
스스로 외국살이를 자처한 건 단순했다.
친구 하나 없는 서울에서 사느니,
오히려 외국에서의 시작이 빡셈의 강도로는
비슷하겠다 싶었다.
중국어도 더 잘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살고 싶었다.
이미 워홀 시절 만들어놓은
삶의 기반이 그곳에 있었기에
‘첫 프리랜서 생활’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는 소속이 사라졌어도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다.
먹고살 방법이 두 가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현지 패키지 가이드,
다른 하나는 비지니스 통번역.
스스로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율성이 나를 지켜줬다.
하지만 먹고살 방법이 없어진다는 건,
실로 엄청난 공포를 불러온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꿈도 낭만도, 글쓰기고 뭐고 다 아무 소용이 없다.
불안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그걸 잘 알기에,
지금의 불안감도 어쩌면 낯설지 않다.
내가 소속을 잃은 건 이번이 네 번째다.
하지만 이전 세 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번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엄마라는 소속은 안정감보다는
책임감이 두 배가 된다.
‘조금만 더 크면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어쩌지?’
“ㅇㅇ네 집 엄마는 일해서 비싼 장난감도 사주는데,
엄마도 그냥 일하지 그랬어.”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일은
세상 모든 직업 중 가장 힘든 역할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을 챙기면서도
나와 분리된 존재인 ‘아이’가 잘 자라도록
모든 면에서 매니지먼트를 해야 하니까.
앞으로 내가 어떤 ‘거처’를 선택하느냐,
어떤 ‘직업’을 택하느냐,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느냐—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선택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폭은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그렇게 산다.
‘나’를 지키면서 ‘아이’를 지키고,
같이 성장하고, 또 사랑하면서.
지금 이 공허함을 자식으로 채워본다.
공허함 하나에
엄마를 찾는 아이의 눈빛을 담고
공허함 둘에
아이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공허함 셋에
내 새끼의 웃음을 채운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더 강한 엄마로,
또 ‘나’로서 성장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