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을 상대에게 보일 필요는 없다

by 나중


최근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가 종영했다. 마지막회에서 이별하는 모습이 나왔다. 마지막 서로에게 서운한 것들을 쏟아붓는 연인. 하지만, '이렇게' 이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다시 진심을 전한다.




이별에도 진심이 필요하다.


나 역시 과거 서툴던 시절, 후회하는 이별을 겪은 적이 있다. 1년 반이 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만난 그 친구와 헤어진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게 싸운 날이었다. 자주 싸웠지만, 그 정도로 작정하고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퍼부은 적은 없었다. 그당시 나는 걔가 참 해도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렇게 싸우고 난 이후, 우리 둘은 깨달은 것 같다. 다시 화해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이미 깨져버린 관계가 되버린 것 같다는.


그 당시 우리가 서로에게 독한 말을 쏟아 부은 건 전화였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던 우리는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은 채 뭐가 뭔지 모를 미성숙한 이별을 했다.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친구를 만난 적은 없다.


그 친구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분명 좋았던 추억도 많다. 가끔씩 예전 추억에 빠져보면, 한 번씩 그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 친구가 그립다거나 어떤 마음이 있다기보다는, 그 당시의 나의 연애가 추억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그 마지막이 너무 아쉽다. 사실 그때도 그렇게 이별한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다시 연락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어차피 끝난 건데 뭐, 어차피 볼 사이도 아닌데 뭐, 이러면서 주저했다. 그렇게 말하려는 건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이별 당시 내가 했던 말들 중에는 내 진심이 아닌 것들도 있고, 내 의도를 온전히 담지 못한 아픈 말들도 많았다. 물론 약간의 진심이 담겨있지만, 그 진심마저 왜곡하게 만드는 못된 말들. 그간 쌓아온 추억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이별하는 건 아니었다. 서로에게 지치고, 이제 애정이 식어갔을 지라도 각자가 쏟았던 시간과 노력만큼은 진짜였기에 그렇게 함부로 평가해선 안됐다. 우리의 시간을 좀 더 존중했어야 했다.



세상에 예쁜 이별이 어딨냐, 이별은 다 아프고 밑바닥까지 보고 헤어지는 거지.



이별할 때 '밑바닥'을 보게 되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밑바닥을 마주하는 건 나 스스로여야 하지 않을까. 굳이 상대방을 끌어내려서 내 밑바닥에 그 사람의 머리를 처박을 필요는 없다. 눈감고 서로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거와 무엇이 다를까. 나도 다치고, 걔도 다칠 뿐이다. '밑바닥'은 반성하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존재 이유를 갖는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껴야 하니까 그렇게 하라기보다는 뭐랄까, 그런 일차원적인 이유보다는 근본적으로는 그 관계, 예뻤던 지난 날들을 훼손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정말 상종 못할 쓰레기가 아니라면, 서로 노력했지만 서운함이 더 컸고, 좋아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헤어지는 그런 관계라면 말이다.


결국 인생은 지난 날의 추억을 돌이키는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서 누구나 최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고, 나만의 인생 챕터를 다양하게 그려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기왕 마지막이 씁쓸한, 아쉬운 이별보다는 그래도 참 좋아했고, 노력했던 그런 모습으로 기억하는 게 '나 자신'과 내 시간을 소중히 하는 거다. 내 인생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챕터를 떠올렸을 때 활짝 웃고, 서툴지만 예뻤던 그때를 따뜻한 마음으로 떠올리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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