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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손

더 늦기 전에...

by sy

얼마 전 엄마집에 다녀왔을 때의 일입니다.


엄마집 앞마당에는 이런저런 채소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채소들은 엄마가 먹으려고 기르는 것들은 아닙니다. 연세가 드시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점점 부엌일에서 손을 놓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저것 자라는 채소들은 주말마다 언니를 집으로 부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줍니다.


"옥수수가 많이 영글었다. 와서 따가라."

"가지랑 고추가 말도 못 하게 많이 달렸다. 언제 올래?"

라고 말입니다.

그럴 때면 언니는 이렇게 말하곤 한답니다.

"엄마, 그냥 엄마 따서 드셔. 왔다 갔다 하느니 여기서 사 먹는 게 낫지."

돈으로 계산하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노력에, 이동에 드는 비용까지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작물들 덕분에 엄마는 당당히 언니를 집으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왜 부르는지 알고 있는 언니도, 차마 엄마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한 채 또 그렇게 주말마다 채소들을 수확하러 엄마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언니는, 멀리 산다는 이유로 내가 편할 때만 들르는 저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하고 귀하기까지 한 딸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의 호출을 받은 언니가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네 언제 올 거냐고 말입니다.

그 주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바로 엄마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언니랑 거의 동시에 엄마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덥다 더워'를 반복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저와는 달리 언니는 냉장고를 열어 청소를 하고 빨래거리들을 모아 세탁기를 돌린 후 앞마당으로 출동했습니다.

키보다도 웃자란 옥수숫대 사이로 들어가 옥수수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멀뚱멀뚱 구경만 했습니다.

이제까지 옥수숫대 하나에서 하나의 옥수수가 달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언니말이 두 개가 열리면 덜 자라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치 수박농사를 지을 때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따내는 것과 비슷한 이유인 듯합니다.

옥수수를 따고. 옥수숫대를 한 손으로 잡은 후 대 아랫부분을 발로 밟으니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습니다. 프로 농사꾼을 방불케 하는 언니의 포스에 감탄하며 그늘에서 열심히 응원을 합니다.


그렇게 옥수수며 오이며 가지 고추 상추 등을 땄습니다.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상추는 하루라도 더 빨리 언니를 소환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기에 최대한 윗부분만 남기고 수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일을 하는지라 요일개념 없이 수시로 소환하는 엄마에게 자주 갈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땡볕에서 농작물을 수확한 후 그늘로 와서 옥수수를 까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무슨 꽃인지 모를 것을 따와서 저에게 대뜸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꽃인데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무에서 꽃대가 올라왔고 엄마가 그 꽃을 꺾어서 저에게 건넸던 것입니다.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원래 우리가 먹는 무에서 이런 꽃이 피냐고 말입니다. 저렇게 꽃이 필 때까지 두지를 않는다고도 하였고, 저 정도로 꽃대로 올라온 무는 먹을 수없다고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여든이 넘은 엄마에게서 순간 소녀감성을 느꼈습니다.

몸이 늙었다고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나이 드신 팬분의 말을 떠올리며, 누구에게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 시절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모습이 남아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엄마는 예쁘지도 않은 손을 뭐 하러 찍냐고 부끄러워하셨지만, 또 그냥 찍는 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마지막으로 엄마손을 잡고 사진 몇 장을 더 찍었습니다.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콘서트장을 가면 마지막 메들리송을 부르며 객석을 돌아다니는 가수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콘서트가 익숙하지 않았던 저는 처음에는 그냥 가운데 자리가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통로자리가 좋은 자리였습니다. 팬을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잡아주는 가수님들 덕에 간혹 무질서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가수님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악수하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응원하는 가수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동안 나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손을 잡아보려고 애써본 적이 있던가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내가 있는 쪽으로 오지 않는 가수님을 아쉬워하는 모습...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마음으로 막내딸의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어 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살갑지 않은 딸이기에 평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보거나 사랑한단 말 한 번 건넨 적이 없는데도 그저 해바라기처럼 바라만 보고, 어쩌다 계단에서 손 한 번 잡아주면 속으로 좋아했을 엄마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아려옵니다. 정작 소중한 내 가족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참으로 못난 사람이었구나 싶은 마음에 후회와 함께 밀려오는 미안함...!!


이제는 어딜 가나 엄마손을 잡아줍니다.

무릎이 좋지 않아서 성격 급한 내 걸음에 맞추지 못하여 매번 먼저 가라고 하시는 걸 모르고... 그냥 손잡고 이끄는 것이 귀찮은 줄만 알았습니다. 천천히 엄마의 걸음폭에 맞춰 손을 잡고 걸으니, 엄마는 그렇게 뼈마디가 느껴지는 손으로 연실 내 손등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동안 무심한 딸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는가 보다... 서운해하지는 않았을지 너무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편찮으신 곳이 많으셔서 앞으로 얼마나 더 엄마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후회가 될 일들을 만들지 말자 매번 다짐하고 있지만, 왜 번번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평생을 자식을 위해 다 퍼주고 이제는 빈껍데기만 남아있는 모습, 그럼에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는 그 모습에 또 한 번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엄마손...

더 늦기 전에...

잡을 수 있을 때...

한 번 더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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