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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Jul 10. 2023

편 지

두근 두근 설레는 편지에 관한 이야기

빨간 우체통을 기억하시나요?

지금도 길을 걷다 보면 가끔 마주치기도 합니다만, 과연 아직까지도 그 안에 편지를 넣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기는 합니다.


손 편지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제가 언제부터 손 편지를 주고받았나 생각해 봤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야기지요. 나름 교회도 열심히 다니던 중학교 때였습니다. 시골 교회라 주변의 두 개 교회와 연합으로 여름수련회를 갔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야기하면 추억 돋네 하시는 분들 계실 수도 있습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진행이 되었고, 이웃교회 형제자매님들과 나름 교류도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주소를 교환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남자형제님 이냐고요? 맞습니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고, 그쪽 교회 목사님 아들이기도 했는데, 편지 안에 곧 죽어도 누나라고 부르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 나는 귀여운 친구다 싶습니다.


요즘처럼 문자로 카톡으로, 또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한 때랑은 많이 달랐던 시절입니다. 오는 전화를 기다리고, 다음날 언제 전화통화를 할지 나름 시간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간절히 기다려지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 저의 나름 연애편지 쓰기 실력이 길러진 때가 중학교 그 시절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아갈 무렵 만났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랑은 진학한 고등학교의 지역이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고 반듯한 외모만큼이나 글씨도 반듯반듯하게 잘 쓰는 친구였습니다. 실제로 만난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편지로 풋풋한 사랑을 고백할 만큼 가슴 설레는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 시절 과연 사랑이 뭔지는 알고 그 친구는 고백을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에도 표정이 있다고 합니다. 뭔가 주저주저하는 듯한 부끄러운 표정이 보이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하지만, 어쨌든 두근거리는 설렘이 묻어나는 편지였습니다.  


읽고 또 읽고...

조금 과장을 보태면 닳아 없어질 듯 반복해서 읽게 되는 편지.

그렇게 나름 절절하게 써 내려갔던, 반복해서 읽었던 그 많은 편지들이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주고받았던 글들은, 지금은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글쓰기 능력이 조금은 나아졌을지는 모르나,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더라도 이리저리 재고 계산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얼마 전에 브런치스토리에서 알림이 왔었습니다.

매일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연습을 하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요즘 다른 곳에 편지를 쓰느라 제대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는 사람을 떠올리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정성 들여서 쓰느라 하루의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뭐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설렘이 받는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있는가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편지를 읽고는 있을까 어느 순간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한번 들었던 의심은 점점 더 머릿속에서 어떤 확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일반적으로 주고받는 편지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받는 사람이 잘 읽고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없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누가 편지를 쓰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좋아서 쓴다고 했고 답장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읽고는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들었던 안 좋은 생각은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국엔 편지 받는 것이 귀찮고 싫은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해였습니다.

곱씹어 반복하여 읽지는 않으나, 어쨌든 대충 훑어보는 식으로라도 읽고는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오해는 풀렸습니다. 내가 썼던 내용을 언급하며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용했던 단어나 내용들이 거의 흡사했습니다.

사람의 정성을 무시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또 그 '생각'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나쁜 생각은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 그래서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애초에 받지 못할 답장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아님 그만 쓸 어떤 핑곗거리를 찾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 저의 편지는 계속될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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