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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Oct 13. 2023

오해입니다...

낮은 레벨...그리고 말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

오늘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전화가 왔다.

일하는 중에는 오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서 무시했는데, 그렇게 전화가 끊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문자 알림이 온 걸 확인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전화 좀 달라는 한 어머니의 통화요청 문자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짬을 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께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우리 ㅇㅇ이한테 수준이 낮다고 말씀하셨어요?"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설마 하니 아이의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하여 수준이 낮다는 말을 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앞뒤 상황도 모른 채 언짢은 마음을 표할 수는 없었다.

요즘 갑과 을의 관계가 있다고는 하나, 나는 이제까지 내가 부당한 말을 들어도 참아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오해였다고 해도,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수준이 높으니 낮으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참기 어려운 것은 틀림없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은 침착하게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무슨 말씀이세요?"하고 나름 친절 한 스푼을 더한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다음과 같았다.

우리 아이가 가뜩이나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는데,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수준이 낮다고 해서 속상한 마음에 울었다더라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전후사정을 물어보시기 위해 전화를 주셨다고는 하나, 첫 목소리에서 약간의 언짢음 내지는 분노가 느껴졌다.


이해는 한다.

일하는 어머니.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못써주는 것이 항상 미안한 어머니.

퇴근하고 돌아오니, 내 귀한 아이가 부당한 대우 내지는 자존심상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황당하고 억울한 나는 어떠한가...

아무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참지 않고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나, 어린 초등학생아이에게 설마 선생이라는 사람이 넌 참 수준이 낮구나... 하는 소리를 했을까... 말이다. 그동안 보아온 나라는 사람의 인격 내지는 수준이 그 정도였다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말속에서 영어라는 단어가 뇌리에 꽂혔고,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바로 떠올랐다.

전부터 아이가 영어를 어려워한다는 말을 자주 하였고, 아이 수준에 맞는 영어학습을 추천한 것이 있었다. 최근 학습결과를 보니, 두 가지 중 A학습은 수월하게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B학습은 문제풀이 점수가 연속으로 낮게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A학습은 B학습보다 레벨이 낮은 거라 문제 풀기가 쉬웠을 것 같은데, B학습은 조금 어렵지 않았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아이가 느끼는 어려움의 정도는 또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나 아이도 어렵다고 말을 했었고,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학습이 끝나면 조금 더 쉬운 걸로 바꿔서 학습해 보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이니 나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나의 말을 잘 못 이해한 것이긴 해도 속상해서 울었다고 하니 사실여부를 떠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말을 듣고 무슨 상황인지 충분히 이해를 하셨다고 했다.


예전에만 해도 어떤 컴플레인이 오면 살짝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언짢다기보다는 짜증 났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컴플레인 중에는 명백한 나의 실수 내지는 어느 정도 잘못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잘못인양 따지기부터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막무가내 분들을 대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가...말이다.

나도 가끔씩은 다른 사람의 말을, 행동을 내 마음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그렇게 맘속으로 마냥 서운해하고 기분 상해서 하루종일 우울해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에 한 글에서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제발 궁예의 관심법을 멈춰주세요!!


나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읽으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일인가 말이다. 내 마음이 어떠한지 당신들 맘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내 멋대로 생각하고 오해하지 말자.

매번 다짐을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동하는 궁예 님의 관심법이 나도 역시 항상 문제가 되었다.






얼마 전에 내가 가입한 팬카페 중 한 곳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듯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을 텐데,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 커져서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댓글이 오가는 일이 있었다.

그중에 한 분이 이런 글을 올린 것이 생각이 난다.


말과는 다르게 글은 어떻게든 흔적이 남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더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에 말과는 다르게... 그렇다면 말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말인가?

입에서 뱉으면 그대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정녕 말이란 말인가?

글은 수정을 할 수가 있다. 심지어 한번 쓴 글은 다른 이들이 보기 전에 삭제가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번 뱉은 말은 취소한다고 해서 취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한 사람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어떤 이의 마음속에서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글은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지만, 생각없이 한 말은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렇다면 글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말일 수 있다.


어떤 이는 혹시라도 실수할까 두려워 말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지만, 말하는 것을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나의 말이 혹시나 의도치 않은 오해를 만들지는 않을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표현이 있지는 않은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 조심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은... 내가 주인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말을 듣는 사람과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국어시간에도 배운 내용이다.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비록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조금 억울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면, 일단 기꺼이 먼저 사과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상대방의 오해라고는 하나, 그런 오해를 할만한 상황을 만든 것도 어찌 되었든 나이니 말이다.


ㅇㅇ아.

미안해. 선생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우리 ㅇㅇ이가 맘이 아팠구나. 영어 잘하고 싶지? 그런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단다. 비밀인데 선생님도 ㅇㅇ이처럼 영어가 참 많이도 어려웠거든. 지금 잘하고 있고 매일 노력하고 있는  ㅇㅇ이를 선생님은 응원한단다.

ㅇㅇ이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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