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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Mar 10. 2024

키오스크와 뷔페가 불편해

학생,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어?

어제는 요즘 핫하다는 영화 [파묘]를 봤습니다. 사실은 지난 일요일에 미리 예매를 했었는데, 토요일에 모세 님 생일파티에 다녀오느라 피곤해서 취소도 못하고 그대로 잠을 자는 바람에 두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어제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그 영화 무섭다더라 하셔서 나름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약간은 잔인한 장면들과 함께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 때문에 여러 번 움찔움찔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시간이 오후 1시가 넘은 라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영화관 근처에 홈플러스 푸드코트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혼밥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만 해도 혼밥을 하느니 그냥 굶자 했는데 요즘은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두 번 하고 나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작 혼밥을 신경 쓰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항상 고민이죠. 여러 가지 메뉴들 중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그렇게 한참 이것저것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학생, 이거 주문할 줄 알아요?"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일단 대학 근처 마트이긴 해도 학생이라니... 어제의 옷차림을 생각하니 캡모자를 쓰고 청바지차림에 얼핏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들어본 학생소리에 나름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한번 더 놀란 것은 나에게 주문을 부탁하신 분이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옷차림도 저는 생각도 못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시고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원하시는 메뉴를 말씀해 주셔서 키오스크로 대신 주문을 해드리고, 나도 고민 않고 같은 걸로 주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나는 처음에 어땠나였습니다.

요즘에야 키오스크가 일반적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흔하지 않았을 시절에 뭔가 불편하다는 생각에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곳은 좀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TV에서 가끔 키오스크 주문이 서투르신 어르신들 뒤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장면이 보일 때면, 혹시나 나도 버벅대서 눈치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키오스크 주문하는 법을 검색을 해서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오히려 키오스크가 없는 곳이 드물기도 하고, 조금씩은 다르다고 해도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이 드니 별로 부담스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는 생각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은 편하게 들더라고요.


그런데, 모두에게 키오스크 주문이 별거 아닌 것은 아닙니다. 당장 엄마만 해도 못하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마트 키오스크 주문하는 곳에 주문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오늘따라 아무도 안 계셨고, 저에게 부탁하신 분은 좀 난감하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결혼식 할 때 잔치국수나 갈비탕을 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시골어르신들, 바로 저희 엄마 아빠만 해도 결혼식장 뷔페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뷔페에 가면 늘 자리에 착석하고 가만히 계십니다. 그럼 자녀들이 좋아하시는 것들로 접시에 담아서 가져다 드립니다. 더 원하는 것이 있으신지 물어봅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접시 들고 돌아다니며 음식을 가져오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일 것입니다. 평생을 차려진 테이블에 앉아서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받았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가져다 먹으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혼식 뷔페가 익숙한 람들에게는 얼핏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은 원하는 맛있는 음식들을 스스로 가져다 먹는 것보다는 차려져 있는 식탁에서 갈비탕을 드시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경제적인 효과를 따지면 키오스크 한 대가 아르바이트생 1.5 명을 두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합니다. 업주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 이득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결혼식 후 뷔페처럼 기기가 불편하신 분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조금 서툴고 늦더라도 눈치 주지 않기!

민망함을 감추고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들 맘 편하게 도와드리기!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이가 들게 되고,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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