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들려준 휴먼 스토리, 그리고 다음 이야기
음식의 국적은 생각보다 모호하다.
한국에서 친밀하게 느끼는 음식이 곧 한국 음식이 아닌가 싶다가도
한국인은 모르는 형태를 하고 있는 한식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계 중화요리인 짜장면과 짬뽕을 한국 요리처럼 받아들이는 반면
일본 여행 중 먹은 야키니쿠를 좀처럼 한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과 같은 현상이 식문화에서도 일어난다.
모든 책과 음식은 원작자가 있고
좋은 책과 음식은 옮긴이가 있고
언젠가 그것들을 2차 가공을 하는 작가 또는 요리사들이 생긴다.
이민자 음식도 이 과정에서 옮긴이의 역할을 한다.
고향의 맛이 그리운 이들이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낯선 재료에 낯선 방식이지만, 조심스럽게 현지화해보고
그게 누군가의 입맛에 맞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 도시는 그 음식을 자기 것처럼 여기게 된다.
하지만 이 ‘성공담’ 속에는
항상 두 가지 긴장감이 공존한다.
첫째, 음식의 본래 의미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국에서 '스시' 하면 캘리포니아롤이 떠오르고,
‘짜장면’은 중국 음식이라 여겨지고,
‘타코’는 이제 멕시코 뿐만 아닌 미국의 스트리트푸드로도 자리잡는다.
원조 문화의 입장에서는
이름만 남고 의미가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이 있다.
둘째, 그 음식이 성공했을 때 과연 ‘누구의 공’인가에 대한 논쟁
타문화가 가져간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을 때,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퓨전이란 말로 감싸기엔
지워지는 사람들의 역사와 노동,
가려지는 이민자들의 고생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퓨전 요리를 사랑한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창작이 들어가는 순간,
그건 곧 그 사회가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다.
"퓨전은 한 사회가 외부 사회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그게 반가운 소식일 수도, 때론 씁쓸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상도 해본다.
몇 년 뒤, 세계 어디서든 마트에 가면
“돼지국밥 파우더”, “고추장 마요”, “파전 믹스”가 팔리고,
해외 대학가에서는 “찜닭 케사디야”, “불족발 반미” 같은
출처가 모호한 메뉴들이 줄지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먹는 사람들은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맛있으니까 계속 사 먹는다.
그 순간,
그 음식은 이미 ‘국적’을 넘어 존재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결국 나는,
음식이란 국적도, 원산지도, 창작자도
시간이 흐르면 흐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흐려지는 풍경 속에서
‘이 음식은 어떤 사람들의 고향에서 시작되었는지’
누군가는 기억해줘야 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글들을 쓴다.
이민자 음식이 왜 탄생했는지,
어떻게 퍼졌는지,
어떻게 ‘섞이며’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메이저가 되어 ‘우리의 음식’이 되어가는지.
“섞으면 맛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열 번째 답은 이것이다.
어디선가 시작해 어디론가 떠나며
나도 바뀌고 나를 둘러싼 지형 또한 바뀌지만
맛있는 음식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섞여 있는데 맛있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퓨전요리와 이민자에 대한 10가지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를 이을 10가지 이야기는
'퓨전 요리를 빛낸 10명의 위인들'
즉 사람 한명이 담은 수많은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