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번역가] 노먼 밴 에이큰

퓨전이라는 단어를 요리에 붙인 최초의 셰프

by 이마루

요즘은 “퓨전”이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다.
퓨전 이탈리안, 퓨전 한식, 퓨전 중식.
뭔가 색다르지만, 너무 낯설지는 않은. 그런 식당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말을 요리 문법에 처음 끌어들인 사람은
의외로 그리 오래된 인물이 아니다.


노먼 밴 에이큰 (Norman Van Aken)

1980년대 후반, 미국 플로리다의 한 주방에서
그는 자신이 하는 요리를 설명하기 위해
무심코 한 단어를 꺼냈다.

“This is... fusion cuisine.”

그리고 그 말은 생각보다 훨씬 멀리 퍼져나갔다.

노먼 밴 에이큰은 특별한 요리 학교를 나온 셰프가 아니다.
미술을 공부하다가 음식에 빠졌고,
요리사로서의 이력은 오히려 자유분방했다.


그는 미국 남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요리 등을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공부했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맛을 조합했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시엔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중남미의 열대 과일과 일본의 된장, 동남아의 향신채와 미국 남부의 향신료,

그리고 이 다채로운 재료들을 프랑스식 조리법으로 완성하여

그의 접시에 담아냈다.


1988년, 그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정적으로 실험을 계속하며

자신의 요리를 묘사할 단어를 고민했다.

"이건... 조합을 넘어서 융합이야. FUSION이야."

그리고 그 말을 1989년 자신의 책 《Feast of Sunlight》에 처음 사용한다.
세계 최초로 요리의 맥락에서 "퓨전"이라는 말을 명확히 사용한 것이다.


당시엔 거부감도 컸다.
퓨전이라는 말은 고급스러운 단어가 아니었고,
“이도 저도 아닌 음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노먼 밴 에이큰은 '뉴 아메리칸 퀴진'이라는 장르를 이끌며
퓨전의 선구자가 된다.

그의 친구이자 유명 셰프인 찰리 트로터,
그리고 이후 등장하는 로이 초이, 데이비드 장 같은 셰프들도
그의 뒤를 잇게 된다.


생각해보면 퓨전은 요리의 어떤 ‘시도’라기보다,
사실은 '삶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이민자 가정의 주방에서,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처음 접한 요리사의 손끝에서

‘있는 걸로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수많은 요리들.
노먼 밴 에이큰은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다.


나는 지금도 퓨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특별한 요리보다 그 단어가 처음 입에 올랐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게 어쩌면 요리가 언어가 되는 순간이었고,
문화가 섞이는 것에 대한 찬사였는지도 모른다.

노먼 밴 에이큰의 요리는 음식으로 쓴 로제타 스톤과도 같다.


“섞으면 맛있을까?”
노먼 밴 에이큰은 그 타당한 호기심을 주방으로 가져왔고

지구인들의 음식을 번역한 첫번째 셰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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