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깬 장인” – 캘리포니아롤을 만든 마시타 이치로
일본 음식에는 ‘고다와리(こだわり)’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집착’ 혹은 ‘고집’이지만,
요리 맥락에선 장인정신에 가까운 말이다.
한 가지 재료, 한 가지 방식,
한 가지 조미의 균형에 철저히 집착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스시 장인들은 이 고다와리 정신의 상징이다.
쌀알의 온도, 생선의 숙성 시간, 간장의 농도까지
모든 요소를 최적화한 끝에
비로소 ‘스시’라는 한 조각이 탄생한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아보카도와 마요네즈를 넣고,
김을 안에 감춘 상태로 만든 스시가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를.
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만들었다.
마시타 이치로 (Ichiro Mashita)
1970년대 초, LA에 위치한 일식집 Tokyo Kaikan에서
마시타 이치로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 미국에선 참치 초밥이 인기 메뉴였는데
참치가 제철이 아닐 때도 수요는 줄지 않았고
신선한 참치 뱃살은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신선한 참치의 맛과 식감을 흉내낼 수 있다면...”
생 참치 대신 잘 익은 아보카도를 사용했다.
기름진 맛이 참치의 지방을 닮았기 때문이다.
아보카도로 채울 수 없던 바다의 맛은 게맛살로 채웠다.
이렇게 탄생된 음식은 오늘날의 캘리포니아롤의 원형이다.
이러한 스시의 변천사는 스시의 고장인 일본의 입장에선
마치 피자 위에 놓인 파인애플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이런 스시는 오히려
스시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입문용 스시가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유를 해보자.
보통 사람들의 첫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은
각국 키즈 채널에 송출된 더빙판이다.
후에 이런 장르에 흥미를 느낀 누군가는
아직 더빙이 되지 않은 작품을 찾게 되기도 한다.
이런 흐름이 타국의 문화로 흡수되어가는 과정이고
캘리포니아롤 또한 일식 세계로 들어가는 첫 단계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적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내가
생애 처음 접한 초밥도 캘리포니아롤과 크런치롤이었다.
이치로를 포함한 북미의 일본계 셰프들이 이뤄낸 것은
단순히 서구인 취향에 맞는 스시를 만든 것 이상의 일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고다와리라는 정신의 껍질을 스스로 벗어낸 일본인 요리사였다.
장인이면서도 기존의 틀을 부수는 사람.
‘그게 스시냐’는 비판에도,
자신이 놓인 현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
열악한 곳에서 피워낸 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캘리포니아 롤, 필라델피아 롤, 드래곤 롤 등 수많은 퓨전 스시들은
그런 판단력과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했다.
그가 그날 아보카도를 깎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스시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시 장인이면서 동시에 틀을 깬 장인.
마시타 이치로는 우리가 퓨전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도 전에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섞으면 맛있을까?’
마시타 이치로는 섞을 수 밖에 없는 상황 또한
훌륭한 맛을 창조해낸다는 것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