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느님은 외국 나가면 옷을 바꿔 입는다?
닭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종교도 크게 금기시하지 않고,
값도 비교적 싸며,
요리도 쉬운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치킨은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다.
하지만
튀겨내는 방식은 나라별로 완전히 다르다.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은
두껍고 거친 튀김옷 위에
기름이 자박하게 남아 있다.
먹고 나면 손에 기름이 끈적이고, 입천장은 살짝 까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바삭함은 뼛속까지 각인된다.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은
얇고 깔끔한 튀김옷에
고추장 양념이나 간장 소스를 덧입힌다.
때로는 파와 치즈, 허니버터가 얹힌다.
튀김 위에 다시 한번 문화를 덧칠하는 요리.
일본식 가라아게는
간장과 생강, 마늘에 재워
작고 단단하게 튀겨낸다.
밥반찬이자, 맥주 안주.
튀김보다는 ‘튀겨낸 양념고기’에 가깝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기본 조리법.
그런데 나라마다 이렇게 다른 이유는 뭘까?
첫째, 기름에 대한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름에 익숙하다.
심지어 버터로 튀긴 버터라는 음식도 있다.
기름진 것은 곧 풍요와 만족이다.
한국은 기름을 좋아하면서도,
튀김의 깔끔함을 강조한다.
바삭하지만 덜 부담스러운 기름맛을 추구한다.
그래서 두 번 튀기고, 기름을 턴다.
일본은 기름 맛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한다.
그래서 간을 입히고 튀긴다.
문화마다 ‘기름은 어디까지 용인되는가’라는 선이 다르다.
둘째, 닭이 어떤 ‘위상’에 있는가도 다르다.
어디선 간식이고,
어디선 메인 요리고,
어디선 술안주고,
어디선 아이들 음식이다.
같은 재료라도 ‘언제, 누구와, 어떤 자리에서’ 먹는가에 따라
조리방식과 맛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퓨전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걸 다른 문화에선 어떻게 먹을까?’
닭은 그 질문에 대한
무한한 실험 대상이다.
마라 치킨, 치킨 버거, 그린커리 치킨,
김말이 치킨, 와사비 치킨, 티카 치킨랩…
푸드코트에서, 야시장 푸드트럭에서,
치킨은 계속해서 변형된다.
하지만 모든 퓨전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떤 치킨은 너무 어색하고,
어떤 치킨은 그냥 원조를 흉내 낸 것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그건 튀김옷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그 치킨이 놓일 ‘상황’을 읽지 못해서다.
퓨전 요리는 맛의 조합이 아니라
문화의 배치다.
같은 치킨이라도 그 문화 안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치킨은 아무리 맛있어도 ‘이상한 음식’이 된다.
언젠가 양념치킨을 처음 먹은 외국인이
“이건 닭이 아니라 캔디다”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어쩐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섞는다는 건 재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걸 둘러싼 기대, 기억, 감각, 습관까지 모두 섞는 일이다.
그래서 퓨전은 어렵고,
그래서 퓨전은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