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여름 (1)

네 캔에 만원

by 현현

스무 살.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친구가 일하는 빙수집에서 4개월간 일하기로.


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늘 갔었던 곳이 이제는 일터가 됐다. 처음 해보는 아르바이트. 돈을 번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달까. 설레는 마음과 두려움을 안고 북적북적한 홀을 지나 주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먼저 반겨준 건 시원한 얼음을 쉴 새 없이 갈아내고 있는 제빙기 소리였다. 이어서 들리는 배달 앱 주문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쉴 새 없이 여러 곳에서 반겨주니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아득했다.


어서 오라는 듯, 첫날부터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기본 16가지 디저트 레시피에 시즌마다 돌아오는 계절 메뉴, 붕어빵 같은 사이드 메뉴까지. 뭐가 이렇게 많은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하얀 얼음 위에 올라가는 다양한 색깔의 토핑들, 과일, 떡, 아이스크림, 치즈 큐브. 몸은 땀범벅이었지만 잠깐이라도 손에 닿는 시원함에 기댔다.


모든 게 아슬아슬하달까. 영수증은 이미 주문대에 걸어둘 수 없을 만큼 쌓였고, 몰아치는 주문에 부족한 재료, 쌓여가는 설거지. 실수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일은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급한 와중에 재료 실수를 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일이 유독 힘든 날이면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친구가 버스를 기다리다 “오늘 맥주 마실래?”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늘 “그래.”였다. 한 캔만 먹기에는 둘 다 아쉬워 우리는 늘 네 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골라 같이 먹을 과자까지 한 아름 안고 편의점을 나왔다. 컴컴한 놀이터 벤치에 앉자마자 한 캔은 안주 없이 목을 축였다. 목은 시원한데 몸에 남은 열기는 채 가시질 않았다. 맥주 네 캔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캔에 남아있던 시원함이 축축한 물방울이 되어 손을 적실 때쯤 일어났다. 시원함이 축축함으로 변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 꺼진 상가들 속에서 편의점만 밝게 빛나는 게 참 묘했다. 누군가의 시간 역시 순탄치만은 않겠구나 느꼈달까.


그만 관둘까 했던 마음이 들기도 했고, 못 다니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다행히 다니다 보니 적응하고 익숙해져서 실수가 줄어들었다. 아주 가끔은 만드는 재미도 있었다. 레시피 같은 거 못 외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레시피 안 보고 만들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빙수 레시피가 손에 익숙해지자 약속했던 4개월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빙수를 만들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스무 살 첫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으니 윙윙 돌아가는 제빙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고, 정신없이 울려대는 배달 앱 주문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하루가 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벤치에 앉아 먹던 캔 맥주 역시 친구와 함께 퇴근하지 않자 자연스레 찾지 않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간 편의점 주류 코너를 보다 그때 친구와 자주 사 먹었던 맥주의 가격이 오른 걸 봤다. 그때의 만원이었던 맥주와 지금의 만 이천 원인 맥주. 그때와 똑같은 맥주인데 가격이 변하니 낯설었다. 겉모습은 그때 마셨던 맥주와 똑같은데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변했다. 맥주도 그렇고 나도.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나름의 경험이었다. 일 끝나고 버스 타고 오던 길에 땀범벅이었던 몸과 후덥지근했던 여름밤공기.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이 그때는 부담스러워서 힘든 날도 있었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몰아치는 주문을 해치우다 기계 청소하고, 설거지 다 하고 집 갈 때 버스에 앉는 그 시간이 참 멀고도 빨랐는데.


스무 살. 손에 닿는 시원함과 입을 녹이던 달콤함을 실컷 느꼈던 나날이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