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_우리만의 기준 만들기
일단 물은 엎질러졌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우리가 어떠한 여행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돈과 시간은 한정적이고 갈 곳과 볼거리는 무한정이기에 먼저 우리의 여행을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를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누구와 함께 하는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제 하나다.
먼저 우리의 방향성을 정하고 좀 구체적으로 우리 여행의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옛날처럼 오프라인지도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길을 찾을 수 있고 와이파이가 터지는 맥도널드를 찾지 않아도 인터넷 연결이 어렵지 않게 가능하기 때문에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10년에 유럽여행을 했을 때는 어렵게 찾아갔던 곳을 이번 여행에서는 렌터카 타고 네비 찍고 갔다.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내가 취득한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의 경험에 의한 것이기에 유튜브나 블로그의 정보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당황하지 말자. 생각보다 지출이 커질 수도, 원하던걸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헛걸음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해도 시간과 돈이라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피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지?
돌아오는 티켓 없는 편도여행이 시작됐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싶은데 오른쪽으로 돌지 왼쪽으로 돌지 고민이 됐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동남아를 시작하면서 즐길지, 귀국 전 마지막으로 즐길지 고민 끝에 그동안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 주는 보상으로 먼저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리고 동쪽으로 태평양을 건너기에는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 천천히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UN회원국 195개국을 다 가볼 수는 없어도 우리는 최대한 많은 곳을 가고자 했다. 안전이 최우선이었기에 외교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참고했다. 검은색 여행금지와 빨간색 출국권고로 표시된 나라는 제외하고 항공료를 고려해서 다음 목적지를 선정했다.
사실 목적지 설정에 있어 와이프와 의견차이가 많이 있었다. 나는 인도가 가기 싫었고 남아공을 가고 싶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이 흉흉했고 보이는 정보들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다녀와보니까 다 사람 사는 곳이고 하지 말라는 “짓”을하지 않으니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도전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내가 조금은 성장했다.
걱정 말고 가도 된다고 자신 있게 추천은 못하지만 가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곳이 너무나도 많다.
특별히 생각나는 위험한 곳은 빨간색 빗금의 특별여행주의보로 표현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다. 남아공의 수도인 케이프타운에 이어 브라질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를 연달아 갔다. 여행하기에 위험하기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3개월간의 아프리카여행을 끝내고 가까운 유럽이 아니라 남미로 향한 것은 유럽대륙을 여름에 꼭 가자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한 지역에 숙소 잡기
19시 전에 귀가
이동은 안전하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앞서 언급한 도시들을 여행하기 전에 우리 부부가 정한 특별규칙이다. 늦어도 저녁 일곱 시 전에는 숙소에 돌아오고 가능한 대중교통 말고 우버 같은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 우리의 규칙을 잘 준수했다. 귀걸이나 시계, 반지 같은 장신구도 다 빼고 다녔다. 만약 소매치기나 강도를 당하더라도 다치지 않는 걸 우선으로 생각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카드 하나는 꽁꽁 숨겨 다녔다.
렌터카 빌려서 거북이 알 낳는 거 보러 갈래
어디를 갈지 정했으니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 한다. 각 나라마다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미리 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우리의 기준은 분명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여행을 하자. 그리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했다. 돈 때문에 망설여지는 순간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여행에서 천만 원, 이천만 원 더 쓴다고 해서 귀국 후 우리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건 없다는 와이프의 말에 공감했다.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투어를 통해서만 해야 하는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자유여행으로 즐겼다.
스리랑카 서쪽 해안에서 거북이 인공부화하는 걸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갔었다. 날짜가 맞지 않아 부화하는 건 보지 못했다.
스리랑카 이후의 나라를 정하는데 오만이라는 나라에는 자연에서 거북이 산란과 부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갑자기 거북이가 부화하는 것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나 가끔 봤던 오만이라는 나라에 거북이 알 낳는 걸 보러 갈 줄이야.
오만에서 렌터카를 빌려 여행을 시작했다. 구글맵에서 숙소 근처에 터틀비치가 있는 걸 확인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밤 12시에 터틀비치로 향했다. 그 날밤 우리는 잊을 수 없는 황홀한 밤을 보냈다.
여행 출발 전에 많은 부부 유튜버들의 영상을 참고했었다. 이렇게 많은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는 것에 일단 놀랐다. 가고자 하는 곳도 다르고 여행을 정의하고 여행을 하는 목적도 다양했다.
여행을 하면서 실제로도 많은 한국인 부부들도 만났는데 역시나 다들 서로 추구하는 여행스타일이 달랐다.
우리 부부는 520일 중에 호스텔에서 지낸 적이 딱 두 번있다. 숙소 선택의 기준에서 가격이 첫번째는 아니였다. 깨끗하고 괜찮은, 주방이 있고 주차가 가능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머물면서, 이동시에는 많은 짐을 편안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렌터카를 선호했다. 대신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숙소에서 한식을 직접 해 먹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체력 이슈로 관광지의 액티비티를 모두 즐기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부부는 숙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반면 정말 많은 액티비티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말도 타고 헬기도 타고 보트도 타고 그 관광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또 어떤 부부는 그들의 삶에 들어가서 어우러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지인들과 직접 대화하고 부딪히면서 얻는 경험을 중요시해서 식사도 초대받고 함께 어울리는 걸 선호했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끝마치고 공통적으로 아쉬워했던 부분은 현지인들이나 외국 국적의 여행자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언어소통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번 여행에서는 외국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여행을 하기로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있다.
본인들이 어떤 여행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여행스타일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계여행이 처음인지라 우리에게 맞는 여행의 기준을 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의식하고 기준을 세우려고 했다기보다는 저절로 찾아졌다는 게 맞는 거 같다. 정답은 없기에 각자가 원하는 여행스타일을 즐기면서 본인들에게 맞는 기준을 찾게 된다면 와이프랑 싸우는 일 없이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당퉁탕 세계여행의 기준
> 이동은 단순하고 편안하게
> 숙소는 깨끗하고 프라이빗하게
> 외식보다는 집밥
>>와이프 말을 잘 들으면 가정이 화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