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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_마음가짐

by 우당퉁탕세계여행
누구나 다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떠나기 전까진

나는 파워 J 계획형 인간이다. 아니, 그랬었다. 나는 휴관일이나 영업시간 확인과 근처 맛집까지도 미리 알아보고 여행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제주도를 여러 번 가고도 섭지코지 내의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유명한 건축물이 문을 닫아 관광하지 못했다는 아내의 말을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2015년 어느 날 그래도 보긴봤다 <제주도_지니어스 로사이>
변수에 대처하는 마음가짐

세계여행을 하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계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끝이 정해져 있는 여행이라면 일정에 맞춰서 계획할 수도 있겠지만 내일 숙소도, 다음 도시도 쉽게 정할 수 없는 세계여행에서는 일정을 세부적으로 미리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계획이 바뀌면서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처음에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대문자 P인 와이프 탓으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세계여행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날씨와 비행기의 연착은 그나마 예측 가능한 가장 쉬운 변수였다. 비가 오면 분위기 있는 카페를 가고 비행기가 연착되면 공항 한편에서 우리의 여행을 기록하는 시간이 생겼음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출발 5분전에 취소는 너무한거 아니오 <아이슬란드_요쿨살론보트투어>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쓰고 싶었다

갑자기 무슨 세계여행이냐?

다녀와서 어쩌려고 그러냐?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당시 생각으론 우리의 용기 있는 도전에 공감해 주는 사람보단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막상 주변에 저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린 양가부모님들은 누구보다도 든든한 우리의 지원군이 되어주셨다. 고맙게도 나의 회사동료들은 여행에 필요한 용품을 사줬고 와이프의 회사동료들은 비상시에 팔아서 보태 쓰라고 금반지를 사주기도 했다.

특히나 우리 개아들을 1년 반이나 길러주신 장모님 장인어른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못 알아봐서 서먹했지만 지금은 다시 잘 지내요

우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서 그래도 잘 살아왔구나를 느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면 스스로에게 세계여행에 대한 적절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죽기 전에 세계 3대 폭포는 봐야 하지 않겠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다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 빅토리아를 봤고 남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이과수폭포를 봤다. 하지만 데크공사 이슈로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못해서 절반만 본듯한 찝-찌입한 기분이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의 나이아가라폭포는 그다음 유럽일정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데크공사로 가까이에서 못 본 <이과수폭포_악마의 목구멍>
럭키비키시티포키

작년 가을 무렵에 우리가 유럽을 여행하고 있을 때 동유럽 쪽은 홍수가 날 정도의 많은 비가 왔었다. 덕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불이 온전히 켜지지 않은 국회의사당도 볼 수 있었다.

원래는 다 켜주는데 불 꺼진 국회의사당을 보다니!!

럭키비키시티포키는 우리의 구호였다. 긍정적 사고를 갖기 위해 구호처럼 외치고 다녔다. 쉽지 않다. 나는 미리 세웠던 계획이 틀어져버리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다.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어떤 식으로든 항상 싸움이 일어났다. 계획만 틀어지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계획도 틀어지고 감정도 상해서 여행도 망쳤다. 효율을 엄청 따지는 내가 지금 생각해도 참 비효율적이었다.

백년만의 홍수로 불꺼진 <헝가리 부다페스트_국회의사당>

베트남을 시작으로 동남아에서 쉬다가 중동 오만에 갔다. 그다음은 바로 옆나라인 아랍에미레이트이다.

아뿔싸!! 꼭 보고 싶었던 미래박물관이 예약이 필수였다. 지금부터 가장 빠른 예약 가능한 날짜가 한 달 반 뒤다.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던 동선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미래박물관은 꼭 들어가 보고 싶었기에 튀르키예를 먼저 갔다가 한 달 뒤에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여행 초반이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최소 한 달 전 예약 필수 <아랍에미레이트_미래박물관>

여행 후반부에 갔던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약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는 걸 워싱턴으로 이동하기 일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 한 달 전에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섬에 있었던 우리 같은 세계여행자들에게는 어려움이 있다. 비록 예약을 못해서 못 봤지만 다음에 꼭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래도 외부는 다 봤잖아 <미국 워싱턴_기념탑>
한 번간 거 두 번은 못 가겠는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우리의 세계여행을 그냥 끝이라 하지 않고 “시즌1 끝”이라고 했다.

“너희는 하고 싶은 건 꼭 해내는 사람들이니까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응원할게!”라는 고마운 친구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시즌2도 꼭 이루고 말겠다.

이제 우리는 왜 경험이라는 것이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직접 여행을 하면서 너무 좋았던 것도 있었고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행하면서 실망한 곳과 못 가서 너무 아쉬웠던 곳, 날씨가 아쉬웠던 곳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곳을 꼭 다시 가리라.

둘 다 감기에 걸려 아쉬웠던 <에콰도르_갈라파고스>
야생화 활짝 핀 여름에 다시 갈 <이탈리아_돌로미티>
그래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좋은 방법이 있다. 돈을 쓰면 된다. 불확실한 변수를 줄일 수 있다.

가령 공항에서 숙소 이동시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택시 또는 호텔 측 픽업차량을 이용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짐을 찾고 나오면 누군가 나의 이름을 들고 서 있는 것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택시이용 방법도 여러 가지다. 난 힘들다. 그냥 부르는 대로 주고 가련다라는 사람은 쉬울 것이고 택시기사와 흥정이라도 해보려는 사람은 조금 귀찮아질 것이고, 눈탱이 맞기 싫고 내가 어디 가는지 굳이 설명하기 싫다면 인터넷을 연결해서 앱기반 택시를 부르면 된다.

여행의 또 다른 형태인 투어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도 종종 투어를 이용했는데 자유여행을 할 때 보다 자유도는 떨어지지만 확실히 마음만은 편하다.

복권이 당첨되기를 빌었던 기운이 좋은 <미국_세도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게 하려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지금을 즐기고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여유를 배우는 것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이들에겐 훨씬 더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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