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의 퇴사 후 세계여행
와이프의 버킷리스트였던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 학창 시절에도 새 학기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 매번 원형탈모까지 겪었다. 도전과 모험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와이프를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지난 몇 년간 여름휴가로 가까운 일본과 태국, 베트남, 중국을 다녀왔다. 끝이 정해져 있는 여행이었고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계획적인 여행이 가능했었다.
2017년에 결혼을 하고 떠난 신혼여행부터 모험이 시작됐다. 미국 LA와 라스베이거스, 멕시코 칸쿤을 2주 동안 다녀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빌려서 그랜드캐년까지 장거리 운전도 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무슨 해외까지 가서 운전을 하고 그 위험한 멕시코를 가냐는 나의 짜증에는 합당한 이유가 없었다. 와이프 말을 들어보니 다 맞는 말이다. 좀 더 자유롭게 우리 일정에 맞춰 다닐 수 있었고 멕시코에서는 안전한 지역의 리조트에서만 지냈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쉽사리 도전을 못하고 아무런 시도조차 안 했던, 그런 내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두 달도 아니고 일 년이나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었다. 결국 일 년 하고도 5개월을 여행했으니 스스로가 더욱 대견하게 느껴지고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용기 내는 것만큼 두려운 남들의 시선
퇴근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하면서도 눈치를 봤다.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저녁에 약속 없으면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던 전 회사 대표님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주 저녁에 밥 먹자는 친구들의 약속에 확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주말만 바라보며 출근을 했다. 좀 쉬고 싶어도 주말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나에게 보상을 하려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선다.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안주하려고 했다. 눈에 띄기 싫었고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수동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
나는 내가 뭘 해낼 수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바다에서 노는 걸 좋아할 줄이야. 8년 전 신혼여행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도 바다에 빠져 죽는 줄 알았다. 세계여행이 끝나기 전까지 수영을 제대로 배우려 했는데 일단 빠져 죽지는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단, 스노클 마스크는 있어야 한다.
사파리 투어하기 전날 두근거려서 잠을 설치다니.
유튜브에서나 보던 건데 내가 지금 사자꼬리를 잡고 함께 걷고 있다니, 상상만 하던 것이 이루어질 때의 기분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 전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설렘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직원이 들어와도 특별한 기대감이나 설렘이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새로움이 익숙해져 갔다.
만약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세계여행 전에 두근거리고 설레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도 이런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네뒷산도 안 올라가 봤는데 눈이 무릎까지 쌓인 겨울산을 오르다니.
신혼집이 서울에 있는 용마산 등산로 입구 쪽이었다. 초등학생들도 무리 없이 다니는 용마산을 3년 동안 단 한번 도전했었다. 그것도 중간까지만 다녀왔었다.
그런데 무려 피츠로이를 올랐다. 눈 덮인 산을 11시간 동안 46,000보를 걸었다. 세계여행이 끝난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생 몰랐을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준 피츠로이와 발톱이 빠질 정도로 고생한 와이프에게 감사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아닌 돈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노동으로 인한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나서 나의 삶과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볼 수 있었다. 평생 일해서 먹고사는 것 외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민한다고 해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마음속 어딘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갖고 싶은지, 또는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건지.
30대 부부의 퇴사, 그리고 세계여행
2023년 2월의 어느 날, 퇴근 후에 와이프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오빠! 베트남 가는 비행기표 예매할까?”
나중에 꼭 세계여행 가자는 말에 나에게는 실제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래 꼭 가자”라고 말한 나는 그렇게 비행기표 예매에 동의했다. 진짜 가는 건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 건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였다.
진짜 퇴사를 하고 온갖 예방주사를 맞고, 집을 정리했다. 배낭을 사고 맥북을 사고 유튜브도 하려고 편집을 배웠다. 준비는 끝났다.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정말 후회가 1도 없었던 세계여행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47개국 520일간의 우당퉁탕 세계여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