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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햇살 가득 스페인_1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by 우당퉁탕세계여행

미국 워싱턴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을 경유하여 스페인 마드리드로 왔다. 우리의 첫 유럽여행은 스페인이다.

세계여행 전에는 어느 나라를 가던지 관광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학습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대항해시대의 정복자이자 무적함대라 불린 스페인이 여러 가지 의미로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게 되었다.

유럽을 넘어 세계를 잇는 혁신적인 시기를 주도했던 개척자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정복과 약탈하면 떠오르는 식민주의의 시작점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사실이다.

남미를 여행하고 스페인에 와서 그런지 식민지배를 받았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괜히 마음이 복잡했지만 오늘날의 화려함과 함께 그늘이 있다는 걸 알기에, 이 도시들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해서 리스카 업체에서 보내준 차량을 타고 리스차를 수령하러 갔다. 유럽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지만 유로에 가입하지 않은 동유럽 일부국가와 영국은 갈 수 없다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 인수증에 사인을 했다. 드디어 89일 동안 타고 다닐 차를 보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운 좋게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아 고급브랜드인 DS7을 타게 되었다. 눈에 띄는 빨간색 번호판과 함께 유럽 곳곳을 둘러볼 생각에 설레었다.

2024년 8월, 한여름 밤의 꿈같았던 17일간의 스페인 여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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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및 동선


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유럽을 여행할 때는 효율적인 동선을 계획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좀 더 P스러운 여행에 동참하기로 하고 그때그때 행선지를 정했다. 마드리스에서 차량을 인수받아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공항에 주차를 해놓고 스페인에서 유명한 휴양섬 마요르카를 다녀왔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발렌시아와 그라나다를 거쳐 세비야를 여행하면서 스페인 남부를 돌아보았다.


마드리드 (Madrid)


7월 30일 한 여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뜨거웠다. 저녁 아홉 시가 됐는데도 밖이 환하고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다. 우리 둘 다 마드리드는 처음이었지만 본격적인 유럽여행에 앞서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느라 특별히 투어를 하지는 않고 데카트론에서 캠핑용품을 구경하고 마드리드의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유명한 곳 몇 군데는 가보자고 해서 찾은 곳 중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바로 솔 광장이다. 솔 광장은 4층 규모의 건물들이 둘러싼 광장인데 중앙에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곰과 산딸기나무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금은 마드리드 지역에서 야생곰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곰과 함께 산딸기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봤던 돌진하는 황소동상처럼 마드리드 곰도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서 발과 꼬리 쪽 색상이 변해있었다. 곰의 코와 산딸기나무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글도 있었는데 상당히 높아서 만지기는 불가능 할거 같다.

솔 광장(Puerta del Sol)


다음도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중앙 광장이다. 플라자 마요르 (Plaza Mayor)는 과거에 투우, 축제, 시장, 심지어 종교재판까지 열리던 장소였다고 한다.

플라사 마요르 (Plaza Mayor)

플라자 마요르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시장인 메르카도 데 산 미겔 (Mercado de San Miguel)에 갔다. 지금은 전통 재래시장보다는 고급 푸드 마켓으로 변모하여 타파스, 와인, 올리브, 해산물 등 스페인 전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현지인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플라자 마요르광장 근처에 위치한 Mesón del Champiñón에 버섯구이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다. 연간 4톤 이상의 버섯을 요리할 만큼 인기 많은 레스토랑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버섯이 자라는 동굴 같은 형태여서 독특했다.

양송이버섯에 올리브오일과 다진 하몽, 마늘, 레몬, 소금 등을 얹은 요리가 메인이다. 이쑤시개 형태의 나무가 두 개 꽂혀 있는데 양손으로 잡고 한입에 먹는 것이 특징이다. 너무 맛있어서 스페인 다른 지역에서도 버섯을 사서 직접 해먹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산 히네스(Chocolatería San Ginés)라는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 추로스 콘 초콜라테(Churros con Chocolate)라는 메뉴를 먹기 위해서 갔는데 초콜릿에 추로스를 찍어먹는 디저트이다. 원조라고 하긴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마드리를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가 바로 핫 초콜릿에 추로스를 찍어먹는 것이라고 한다.

초콜릿을 만드는 원재료인 카카오 나무가 자랄수 없는 기후를 가진 스페인에서 어떻게 초콜릿이 유명한가를 생각해보니 카카오의 원산지가 바로 중남미이다. 또대항해시대에 들여온 고급 음료로서 유럽에서도 초콜릿을 최초로 즐긴 나라가 스페인이라고 한다.


마드리드에서 3박을 하고 바르셀로나로 이동을 하기 위해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했다. 바르셀로나까지는 600km가 넘는 거리여서 중간지점인 젤사(Gelsa)라는 곳에서 하루 쉬었다 가기로 했다. 뭐가 있어서라기보다 마드리드를 벗어나면서 대형 쇼핑몰을 들렀다 오느라 바르셀로나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지기도 했고 몬세라트라는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골마을 Gelsa

스페인 고속도로를 달리면 거대한 황소 형태의 철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원래는 1956년에 스페인 브랜디 회사 ‘오스보르네(Osborne)’ 가 광고 목적으로 설치한 대형 간판인데, 1994년 EU 법에 따라 알코올 광고가 고속도로에 금지되면서 글자는 다 지워지고, 스페인 전역에 약 100여 개의 검은 황소 실루엣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높이 약 14미터의 황소는 마치 투우를 연상캐하는 스페인의 상징적인 실루엣이 되었다.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


몬세라트 수도원(Monestir de Montserrat)은 바르셀로나 근교 여행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하나이다. 해발 약 720m 지점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톱니모양의 바위산에 자리 잡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9세기에 작은 규모의 경당으로 시작하여 11세기(1025년)부터 수도원으로 공식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된 수도원을 복구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에 있어서 가보기로 했는데 여유롭게 쉬면서 둘러볼 수 있었다. 산속에 있어서 가는 길의 전망도 좋았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아치들 사이로 산 밑의 풍경이 보이는 넓은 광장이 나온다. 생각해 보면 비록 나는 무교이지만 여행을 하며 종교와 관련된 시설들을 참 많이 방문하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종교와 관련된 공간들을 참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이런 장소들이 역사와 문화 속에서 깊은 뿌리를 내려왔고,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안쪽의 건물로 향하면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검은 성모상(La Moreneta, 라 모레네타)을 볼 수 있다. 수도원 자체는 무료이지만 검은 성모상을 바로 앞에서 보기 위해서는 참배 동선 입장권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내부의 복도를 따라 한 줄로 서서 이동하는데 성수기 때 사람이 많으면 한 시간 이상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카탈루냐 사람들의 수호 성모로 숭배되는데 바르셀로나 FC 경기장에도 라 모레네타 조각상이 있을 정도로 지역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한다.

손에 든 구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 여행 끝까지 사고 없이 잘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점심도 먹고 여유롭게 구경했다. 검은 성모상에 소원을 빌고 밑으로 내려오면 절벽 위에 지어진 수도원의 호텔과 레스토랑 건물을 볼 수가 있다. 바위산 위에 지어진 아슬아슬한 모습이 장관이다.



바르셀로나 (Barcelona)


유럽에서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 왔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문이라 더 기대됐다. 예전과는 달리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주거환경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자 규제를 하고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지나가다 현지인이 쏜 물총에 맞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카사 밀라(Casa Milà)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첫 번째 관광은 카사밀라다. 1912년에 완공된 바르셀로나의 부유했던 사업가 페레 밀라(Pere Milà)의 집이다. 온라인으로 미리 15분 단위의 표를 예매했다. 입구에서 시간대 별로 줄을 세워 놓기 때문에 예약한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건축물 앞에 서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든다. 외관은 물결치고 기둥은 나무처럼 자라나며, 난간마저 하나하나가 조각품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정도의 곡선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은 없을 것이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거리에서 신호를 수신받으면 저절로 그 공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방식이어서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1910년대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카사 밀라는 앞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초인종이 각 세대로 연결된 세계 최초의 건물 중 하나였고, 현관에서는 작은 구멍을 통해 방문자의 얼굴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아파트 인터폰이 그 원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는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는데, 카사 밀라는 지하에 마차와 자동차를 위한 주차 공간을 설계했다는 것도 시대를 앞서간 설계라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에 올라서자, 곡선으로 이어진 다락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고래의 갈비뼈 같은 곡선 아치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준다. 이곳은 ‘가우디 전시 공간(Espai Gaudí)’으로 꾸며져, 그의 건축 모형과 가구, 도면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무와 돌, 철을 다루던 장인의 손길이 그대로 담긴 가구들을 보니, 가우디의 건축이 단순히 외관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활공간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옥상에 올라서자 눈앞에 바르셀로나의 전경이 펼쳐졌다. 파도처럼 굽이진 지붕 위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굴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여전히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였는데, 같은 하늘 아래 가우디의 두 작품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건축 설계 전공인 우리 부부는 계속 감탄을 하면서 도대체 도면을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했는데 오늘날 2D 평면도나 단면도 중심이 아니라 스케치와 모형의 활용을 많이 했다고 한다.

미리 수학적으로 계산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업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같이 호흡하면서 즉흥적으로 수정·보완해 나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장인들을 단순 노동자로 보지 않고, 예술적 동료로 여겼다고 하는데 직접 건물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구엘 공원 (Parc Güell)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구조물은 숲 속의 나무나 동굴처럼 보이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점심때쯤 갔는데 너무 덥고 바닥도 포장이 아니라 흙바닥이어서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중앙광장은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없어서 나중에 보기로 하고 일단 그늘을 찾아다녔다.

커다란 돌기둥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마치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주는 산책로를 찾았다.

커다란 기둥들이 기울어진 채 서 있고, 석재 표면을 다듬어 매끄럽게 만드는 대신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림으로써, 인위적이지 않게 보이려는 시도를 했다. 흙과 바위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마감 덕분에 진짜 동굴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전경이 펼쳐지는 중앙광장 밑에는 빗물을 받아서 재활용하는 시스템이 있다.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저장하는 시스템도 있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비가 와서 넘치게 되면 구엘공원의 마스코트 도마뱀의 입으로 물이 흐르게 된다.

그 옛날에 이런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감탄이 나온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14년 전에는 가우디의 대표작 사그리다 파밀리아만 내부에 들어가서 구경했는데 이번에는 가우디의 많은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가우디 작품들을 조합해서 콤보티켓을 예매하면 개별로 사는 티켓보다 저렴하다.

카사밀라와 마찬가지로 방문시간을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 입장하면 헤드셋과 함께 오디오 가이드를 준다.

1906년에 완공된 바르셀로나의 부유한 사업가 호세프 바트요(Josep Batlló)의 건물이다. 매매 후 철거하고 새로 짓고 싶어 했지만 가우디의 설득으로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저층부에 본인가족이 살고 위층은 임대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엘레베이터의 보급이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고층을 오르내리기 쉽지 않아 오늘날과는 반대로 저층이 주인세대로 쓰였던 거 같다.

내부를 둘러보는데 내가 밟고 있는 바닥 말고는 직선을 찾기 힘들다. 난간과 문고리 하나까지도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요즘은 건축재료의 발달로 공기도 짧아지고 단열이나 환기 등 거주환경도 좋아졌지만 가우디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런 장인정신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쉽다. 비용이 아무리 쏟아부어도 이 정도의 디테일을 구현해 내기는 불가능할 거 같다.

카사 바트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파티오(PATIO) 중정이다. 건물 전체 세대에 자연광과 환기를 공급하기 위해 고안한 시스템이다. 타일을 위쪽은 진한 파란색, 아래쪽은 옅은 색으로 배치하여 햇빛이 아래층까지 균일하게 퍼지도록 계산했다고 한다.

주인세대뿐만 아니라 임대 세대들의 거주 환경까지 생각한, 어찌 보면 당연한 배려가 홀대받는 우리나라 임대주택과 비교되어 씁쓸했다.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같은 건물들을 실제로 걸어보고 만나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그 시대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Barcelona Pavilion)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Expo) 독일관으로 설계된 파빌리온을 보러 왔다. 독일의 근대적, 진보적 이미지를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전시용 국가관으로 건축계의 또 한 명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작품이다.

방금 전까지 봐왔던 가우디의 작품이랑은 확연히 비교되는 건물이다. 지붕을 지지하는 얇은 기둥으로 인해 벽은 하중을 지지하지 않고 공간을 나누는 요소가 되고 자유로운 평면이 가능하게 해 준다.

그냥 별거 아닌 건물 같은데,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하중을 지탱해 가면서 쌓아 올리던 기술을 아닌, 불필요한 장식 없이, 순수한 형태와 재료의 힘만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모더니즘의 시작, 근대사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성지순례하는 느낌으로 14년 전 내가 했던 포즈를 따라 해 보았다. 많은 것이 달라진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건물을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잘 살아왔는지, 잘 살고 있는지 묻는 것만 같았다.

2010년의 나
2024년의 나

내부에는 고급 대리석으로 만든 벽들이 있다. 요즘 지어지는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도 오마주 되어 사용될 정도로 상징적인 벽체이다.

가우디와 마찬가지로 미스반 데 로에도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는데 붉은 대리석 벽체 앞에 유명한 바르셀로나 체어가 놓여있다.

뉴욕 아파트 인테리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는 수공간이 두 개 있다. 하늘과 건축물이 반사되는 모습에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자연을 건축 속으로 끌어들이고, 명상의 순간을 제공하는 장치이다.

유럽여행을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1900년대 초에 활동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형태와 물, 빛, 재료가 어우러진 공간은 100년 전의 건축이지만 여전히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다가왔다.



몬주익 통신타워

(Torre de Comunicacions de Montjuïc)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앞쪽 광장에는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분수,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분수와 더불어 세계 3대 분수라고 불리는 몬주익 분수가 있다. 예전에는 노을질 무렵 계단에 앉아 감상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물공급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만 보아서 아쉬웠다.

2010년 몬주익 분수

다시 차를 타고 몬주익 통신타워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달렸던 길을 따라 올라갔다.

하얗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니 누가 설계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하여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타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본 탱고를 추는 커플을 형상화 한 다리와 비상하는 새를 형상화한 뉴욕의 오큘러스처럼 이번에는 올림픽 성화를 들고 있는 운동선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탱고를 추고 있는 커플
비상하는 하얀새
성화를 들고있는 운동선수

예전에는 버스를 타고 힘들게 찾아왔었는데 이번에는 네비를 찍고 편하게 왔다. 왜 저런 희한한 포즈를 하고 사진을 찍었는지 14년 전의 나에게 물어봤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덕분에 지금의 나도 힘들게 사진을 찍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ília)


하단의 왼쪽이 2010년이고 오른쪽이 2024년의 모습이다. 1882년부터 시작한 공사기 때문에 매년 곧 완공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아직도 공사 중이다. 사진상으로는 종탑만 하나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뒤쪽으로 여러 개의 탑이 완공되어서 전체적인 외형은 거의 완성단계라고 한다.

2010년과 2024년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티켓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 기억을 되살려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진작에 매진되어 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표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쉽게도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내외부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매표소를 통과해 계단을 오르면 정면 파사드가 보이고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모형을 전시해 놨다. 모형이지만 그 웅장함을 감출 수가 없다.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들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너무 잘되어있어서 가이드 없이 셀프로도 돌아보기 좋은 거 같다.

외부 파사드의 조각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내부로 들어가면 그 황홀함에 모두 천장을 바라보게 된다. 숲처럼 뻗은 기둥,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한 빛의 연출이 구현되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첨탑들이 완성되면서 내부에서도 더 다양한 빛이 들어오고, 높이감이 극적으로 강화된 모습이었다.

저녁 6시 타임에 예약하고 갔는데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풍성했다. 동쪽의 창은 푸른색·초록색 계열로 아침의 맑고 차가운 빛을 상징하고 서쪽의 창은 빨강·주황·노랑 계열로 저녁의 따뜻한 석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둥들이 나무처럼 뻗어 있는 구조와 맞물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들어오는 빛이 마치 숲 속에 비친 햇살처럼 흩어진다. 사람들이 많아서 어수선한 분위기만 아니라면 공간자체는 마치 조용한 숲 속을 걷는 기분이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멈춰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니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다.

2025년 현재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완공 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172.5m)이 될 예정이다. 2026년이 가우디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지 100년이 되는 해라 그때를 맞춰 준공을 하려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더 미뤄져서 2030년이나 되어야 준공이 될 거 같다고 한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지하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탑(Star of Mary) 모형


스페인 여행을 정리하다 보니 죄다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관광에 특화되어 있는 도시에서의 볼거리 중 절반 이상은 건축물인 거 같다.

다음번 여행은 스페인의 대표 휴양지 마요르카와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 플라멩코의 발상지 세비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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