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건축여행 프랑스_2

알프스를 곁들인 프랑스 동남부 여행

by 우당퉁탕세계여행

유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여행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발해 파리까지 올라왔으니 유럽대륙을 크게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하고 북유럽으로 방향으로 향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며 여행하기에는 변수가 너무나도 많아서 이때부터는 숙소예약을 하루 전날 아니면 당일에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올림픽이 막 끝난 시점에 여행한 프랑스 도시들의 여행기록이다.



메츠 (Metz)


북쪽의 네덜란드를 가기 위해서는 벨기에를 통과하는 것이 가장 짧은 동선이었지만 네덜란드를 여행한 후 가게 될 북유럽여행이 끝나면 독일의 서쪽도시들을 여행하지 못할 동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벨기에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프랑스 동부의 메츠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파리에서 동쪽으로 세 시간쯤 달리면 메츠라는 도시가 나온다. 독일 국경과 가까워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이 번갈아가며 영토를 차지했던 적이 있어서 두 나라의 문화가 혼재된 지역이라고 한다.



퐁피두 센터 메츠 (Centre Pompidou-Metz)


이곳에 2010년에 개관한 파리의 퐁비두센터 분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2014년 프리츠커 수상자인 일본 출신 건축가 시게루 반(Shigeru Ban)이 설계에 참여한 건축물이다.

파리에서 물결치는 유리파사드를 설계한 사나(SANAA)를 비롯해서 바로 이웃국가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총 8명(SANAA는 두 명)의 프리츠커 수상자를 배출해 낸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 명의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가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건축시스템이 건축가 개인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건설 산업 중심의 구조가 강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프리츠커상은 건축가 개인의 철학과 일관된 작품 세계를 중시하는데, 국내 건축 및 설계환경이 이를 뒷받침하기에 다소 부족하고, 따라서 국제적 인지도를 쌓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제한적 예산과 짧은 설계기간으로 인해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임을 아쉬워하며 일본 출신 건축가가 프랑스에 설계한 퐁피두센터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적한 마을에 도착해서 퐁피두센터와 조금 떨어진 노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는 듯한 퐁비두센터로 향했다. 3차원으로 짜인 목구조 위에 섬유막을 씌운 지붕이 가장 큰 특징으로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대형 목구조형태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산업적이고 기계적인 이미지였는데 메츠의 퐁피두는 얇아 보이는 지붕 때문에 가볍고 밝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지붕 위를 덮고 있는 반투명한 코팅섬유 막은 내부로 자연광을 고르게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건물 외부는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조형미를 갖고 있어서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앙 아트리움(Forum)이 펼쳐진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자연광과 그랑죠를 연상캐하는 목재 구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부 전시까지 둘러보기에는 룩셈부르크를 들렀다가 벨기에로 넘어가 캠핑을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로비만 구경했다. 아래 사진의 모형을 보면 세 개의 매스가 돌출되어 메츠의 주요 전망을 바라볼 수 있게 했는데 도시와 전시공간을 시각적으로도 연결한 건축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종이로 만들어진 관이나 목재 등 가벼운 재료를 다루는 시게루 반 특유의 접근은 파티션과 의자 등 내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재료의 강도와 내구성에 대한 선입견을 구조 실험으로 뒤집는 방식이 특징인데 임시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충분히 건축적인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여행중이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작품집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는데, 퐁피두(Pompidou)라는 명칭은 과거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의 이름에서 차용되었다고 한다. 그는 현대미술과 현대문화의 대중화를 강하게 추진하며, 파리에 대규모 현대문화 복합시설을 계획했고, 그 결과물이 오늘날의 퐁피두 센터다.


예술을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프랑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파격적인 형태와 실험적인 구조를 과감하게 수용하며, 새로운 건축적 시도를 공공 영역에서 실현하도록 밀어주는 문화가 부럽게 느껴졌다.




국가별로 기록을 하다 보니 순차적인 동선의 흐름대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 이번 여행지같이 놓칠 수 없는 건축물을 구경하러 갈 때는 동선을 계획하는데 참 고민이 많았다.

25번이 퐁피두센터가 있던 메츠였는데 같은 프랑스 내에 있는 79번(롱샴성당)을 가자니 동선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결국 북쪽으로 올라가 네덜란드와 덴마크, 독일과 동유럽국가들을 돌고 나중에 스위스에 왔을 때 갈 수 있었다.



롱샴 성당

(Chapelle Notre-Dame-du-Haut, Ronchamp)


메츠에 있을 때가 8월 말이었는데 몇 개 나라를 여행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낙엽이 지고 있는 10월 중순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워 배낭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끝내 포기했던 르 꼬르뷔지에의 대표작, 롱샴 성당을 마주하는 날이다.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장소임은 분명하다. 파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 연결도 거의 없어, 보통은 건축 투어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로 접근해야 한다. 그만큼 쉽게 갈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 건축물에 대한 기대감을 더 키운다.

주차장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차량이 거의 없었다.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매표소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같은 버섯이 있던 주차장

성당으로 올라가기 전, 방문객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매표 및 방문자 시설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아니다. 이 건물은 파리의 퐁피두센터 설계에 참여한 렌조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것으로, 롱샴 성당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다. 현대적인 재료와 가벼운 구조를 사용해 시각적 존재감을 최소화했고, 본당의 조형성을 방해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낮고 투명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매표소 건물이 눈에 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선과 기능은 매우 명확하다는 것이다. 방문자는 이 매표소 건물을 거친 뒤 천천히 언덕을 오르고,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성당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전이 공간으로 작동한다.

마치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사파리 투어를 하기 전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좁은 시야의 길을 따라 올라가니 롱샴성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4년 10월에 방문했을 당시, 롱샴 성당은 한쪽의 원형 예배 공간(측면 예배당)이 보수 공사 중이었다. 1955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보니 당연한 보수고 관리겠지만 아주 살짝 아쉬웠다.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는 우리 부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책에서만 보던 롱샴성당 앞에 서 있다는 걸 만끽하며 한참 동안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르 코르뷔지에의 합리적이고 기능주의적 건축과는 전혀 다른 조형 중심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두꺼운 곡면 벽체와 조각처럼 얹힌 콘크리트 지붕은 건축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인식된다. 파리에서 방문했던 빌라 사보아와 비교해 봤을 때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언덕 위의 커다란 매스덩어리는 비대칭적이고 벽체는 과하게 두꺼워 보이고 창의 위치도 규칙적이지가 않다. 르 꼬르뷔지에 설계의 기준이 합리적인 기능이 아니라 빛과 종교적 체험으로 바뀐 사례라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공간 자체의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함께 존재한다.

매표소에서 걸어 올라온 반대편 입구를 통해 실내로 들어섰다. 이 내부 공간이야말로 롱샴 성당의 하이라이트다. 깊이감이 느껴질 만큼 두꺼운 콘크리트 벽체에 불규칙하게 뚫린 작은 창들로 빛이 스며들고, 그 빛은 벽면에 점처럼 박혀 있었다. 공간은 어둡고 고요하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숨을 죽인 채, 이 공간을 느끼기 위해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부 벽체에 뚫린 작은 창들 중 일부에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된 짧은 종교적 문구가 유리에 직접 새겨져 있었다. 르꼬르뷔지에가 직접 선택한 문구들인데 창의 크기와 방향이 제각각이듯, 글씨 또한 규칙 없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메인이 되는 예배당 말고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는데 거친 질감의 마감과 실내를 비추는 빛이 내부 공간을 더욱 종교적인 느낌이 나는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내부를 둘러보며 공간을 느꼈다. 관광객 몇 명이 조용히 자리를 옮길 뿐, 내부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벽에 맺힌 빛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설명이나 안내가 없어도, 이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무교인 나는 종교적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다시 바깥의 풍경과 마주하자, 내부의 고요함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롱샴 성당은 짧게 둘러보고 사진만 남기기보다는, 여유 있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고, 그 덕분에 성당은 한층 더 선명하게 보였다. 흐린 날씨 속에서 다소 무겁게 느껴졌던 외관은 햇빛을 받자 곡선과 두께감이 또렷이 드러났다.


롱샴 성당 앞쪽(마당 쪽)에 보이는 낮은 건물은 같은 시기에 지어진 순례자 숙소(Maison des Pèlerins)다. 롱샴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는 종교 공간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성당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 생활이 함께 고려된 장소라는 점이 의미 있다.

모든 여행자가 자유롭게 호텔처럼 예약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리 컨택해서 순례자와 같은 종교적 방문자로서 예약문의를 거친 후 허가가 나면 실제 숙박도 가능하다고 한다.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도미토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 역시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했다고 하니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첫 번째 유럽 배낭여행 때는 짧은 일정과 좋지 않은 접근성 때문에 결국 포기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되면서, 오래 미뤄두었던 인생의 큰 숙제 하나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유럽여행이 우리가 여행했던 다른 대륙들보다,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건축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진이 아닌 실제 공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유럽의 알프스(Alps)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산맥으로, 지형과 기후,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온 지역이다. 하나의 산이 아니라 여러 개의 고산 지대와 계곡, 고원, 빙하가 복합적으로 얽힌 거대한 시스템이다.

총 길이 약 1,200km로 내가 알고 있던 스위스 외에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총 8개국에 걸쳐 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와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알프스를 여행한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10월 중순, 프랑스의 알프스, 샤모니 여행기록이다.

83번 샤모니


샤모니 몽블랑 (Chamonix-Mont-Blanc)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알프스를 여행한 후에 마지막으로 오게 된 프랑스의 알프스였는데, 그만큼 기대와 기준이 모두 높아진 상태였어도 샤모니라는 마을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비교적 저렴한 물가도 한 몫했지만 거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샤모니는 프랑스 알프스 북쪽 기슭에 있는 산악 마을로, 몽블랑(Mont Blanc, 4,807 m)을 중심으로 한 자연경관과 등산/케이블카/빙하 체험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주변국가들에 비해 저렴한 물가 때문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주차가 가능한 에어비앤비를 숙소로 잡고 첫 번째로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에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샤모니 마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인데 정상부의 혼잡을 막기 위해 정해진 시간대에 정해진 인원만 케이블카를 탑승할 수 있는 구조였다.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고산 지역이다 보니 바람이나 구름, 시야 상태에 따라 운행이 지연되거나 잠시 중단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우리는 케이블카 탑승이 재개될 때까지 매표소 앞에서 대기하다가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 탑승권에는 매표소 바로 옆에 에귀 뒤 미디를 4D로 체험하는 것도 포함이어서 탑승까지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한 번 갈아타는 것을 포함해 약 20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두 배에 가까운 높이의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 도착했다. 사방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눈앞의 풍경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알프스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위스의 융프라우 (Jungfrau)가 4,158m인데,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몽블랑 (Mont Blanc)이 4,807m로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다.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는 유리 바닥 전망대인 Step into the Void가 설치되어 있어 발아래로 수백 미터 아래의 공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엄청난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서 실내로 들어와 대기시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잠실 롯데타워 전망대의 유리 바닥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야외에 있다 들어와서 그런지 바람과 추위가 느껴지는 듯했다.

사진을 찍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조금씩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고 운 좋게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볼 수 있었다. 2024년 10월 20일에 방문했는데, 이미 겨울이 시작된 듯 정상부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차가운 공기가 고산의 높이를 실감하게 했다.

추위를 느끼며 알프스를 바라보고 있던 중, 산 능선을 따라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착시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스키를 들고 직접 산을 오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설원과 거대한 산세 속에서, 그 작은 움직임들이 오히려 알프스의 스케일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에귀 뒤 미디에서 내려다본 알프스는 압도적인 자연이었고 그 신비로워보이는 자연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몽환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몽땅베르 (Montenvers – Mer de Glace)


샤모니 시내에서 출발하는 빨간 산악열차를 타고 약 20분 정도 올라가면 도착하는 몽땅베르는 해발은 약 1,913m로, 에귀 뒤 미디에 비하면 한참 낮지만 빙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이다.

몽땅베르에 도착하면 전망대에서 메르 드 글라스 빙하를 내려다볼 수 있고,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 빙하 내부에 만든 얼음 동굴(Grotte de Glace)로 내려갈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빙하가 많이 후퇴하면서 접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협곡 사이에 자리한 빙하 위에는 돌과 흙이 두껍게 쌓여 있어, 멀리서 보면 얼음이라기보다 마른 계곡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가까이 내려가서야 비로소 빙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오전에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몽땅베르에 머물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았고, 결국 내려가는 일정은 포기했다. 대신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에서 모레노 빙하를 직접 보았던 기억을 작은 위안으로 삼으며, 단풍이 들어 한층 더 깊어진 몽땅베르의 풍경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샤모니 마을이 유독 예쁘게 느껴졌던 이유는 단순히 풍경 때문이라기보다, 여러 요소가 균형 있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거 같다. 몽블랑과 알프스의 산세는 압도적이지만, 낮은 건물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 덕분에 산은 배경으로 머물고, 마을은 일상의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마을 중심가 대부분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고 보행 동선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이십 분만 올라가면 또 눈 덮인 알프스를 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았다.

이런 이유들 덕분에 샤모니는 단순히 알프스를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알프스 안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을처럼 느껴진다.




앙시 (Annecy)


83번 샤모니에서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라는 도시를 가기 위해 프랑스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앙시로 이동했다.

운하가 흐르는 구시가지와 작은 다리들 덕분에 비교 대상이 분명했고, 이 별칭이 앙시라는 이미지를 빠르게 각인시켰다.

프랑스 리옹과 스위스 제네바같이 국제공항이 있는 큰 도시에서 가깝고 마을이 동화처럼 아름다워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어서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이동했다. 단풍이 든 나무들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유럽에서도 깨끗하기로 손에 꼽히는 앙시호수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앙시를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삼각형 형태의 건물인 팔레 드 릴(Palais de l’Isle)은 건축적으로 특별한 장식이 있는 건물은 아니지만, 앙시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운하 양쪽으로 늘어서있는 레스토랑에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에 왔는데 달팽이 요리를 안 먹어 볼 수 없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앙시호수에 왔다. 여의도 약 3배가 넘는 크기의 앙시 호수(Lac d’Annecy)는 알프스 빙하가 형성한 호수로 최고 수십이 80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보트 연료 사용과 개발도 제한한다고 한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넓은 잔디밭도 있어서 멀리 보이는 알프스 능선을 배경으로 앙시호수를 즐기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유럽여행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유럽 쉥겐조약 때문에 90일 밖에 머물지 못해서 이탈리아 남부와 프랑스 남부 둘 다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2024년 10월쯤 인스타에서 로마에 지금 오지 말라는 게시글이 많이 보였다. 관광지 곳곳이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 때문에 볼 수가 없다는 글들이었다. 우리 둘 다 로마는 한 번 가보기도 했고 이탈리아 남부를 짧게 쫓기듯 구경하기에는 아쉬울 거 같아서 프랑스 남부도시를 가기로 했고 그곳이 마르세유였다.


앙시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남부 최대도시인 마르세유(Marseille)로 향했다. 한 번에 이동은 너무 오래 걸려서 85번에 위치한 베르동 협곡(Gorges du Verdon)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쉬고 베르동 협곡으로 이동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곳곳에 전망 포인트들이 많았다. 안전펜스가 따로 없어서 조심해야 했는데 협곡 아래 풍경이 엄청났다. 가까이에서 내려다볼수록 긴장감이 커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협곡은 거대하고 웅장했다. 절벽 가장자리로 다가가면 공간의 깊이가 체감된다. 큰 새가 날아다니는 협곡은 거의 수직에 가깝고, 아래로는 베르동 강이 옥빛에 가까운 색으로 흐른다. 물빛이 유난히 밝은 이유는 석회암 성분이 강물에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청난 높이와 규모에 유럽의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불리는 베르동 협곡은 최대깊이가 700m나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TV에도 나온 패들보트와 카약을 탈 수 있는 액티비티 구간도 있는데 우리는 드라이브만 즐기고 마르세유로 향했다.


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로운 일정이었다. 세계여행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가면서, 빡빡한 일정보다 여유 있게 하루를 쓰는 방식이 우리에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 차량으로 이동할 때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목적지보다 과정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도로 옆에 하얀 꽃이 피어있는 넓은 들판옆에 차를 세우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순간을 즐겼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 초록과 하얀 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다.





마르세유 (Marseille)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마르세유에 왔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 도시다. 국가 권력이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항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확장된 도시다.

우리가 이탈리아 남부를 포기하고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오래된 아파트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이다.

프랑스에 온 김에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스위스 화폐에도 새겨져 있는 스위스 출신 건축가이자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들을 원 없이 보고 가기로 했다. 파리의 빌라 사보아와 롱샴성당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세 번째 작품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개별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도시 구조를 조직하는 도구로 보았다. 수많은 건물들에 영향을 끼친 근대 건축의 5원칙과 더불어, 도시 차원에서는 밀도와 혼잡을 수직으로 해결하려는 이상을 추구했다.

요즘은 주거와 함께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고 실험적인 발상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통해 주거, 상점, 보육, 공용시설을 하나의 건물 안에 통합하며 수직 도시를 구상했다. 이 시도는 복도형 구조, 고층화, 표준화된 주거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오늘날 현대 아파트의 원형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18층 규모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역시 철근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달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 석재나 조적에 의존하던 주거 건축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고층화와 대규모 집합주거가 가능해졌고, 구조와 평면, 입면을 하나의 논리로 통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는 빌라 사보아에서 보여주었던 철근 콘크리트의 가능성이 집합주거로 확장된 사례이기도 하다.

오늘날 아파트나 주상복합처럼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은 없어서 지상에 주차를 하고 1층의 필로티를 지나 입구로 들어갔다. 1952년에 완공된 건물이라 마감이나 인테리어는 확실히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이는 단순한 노후라기보다 당시의 재료와 설계 의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꾸밈없는 콘크리트 표면과 절제된 공간 구성은 이 건물이 주거 실험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18개 층 중에 3,4층의 일부세대를 호텔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체크인은 1층 로비가 아닌 3층에서 할 수 있었다. 건물 이용에 대한 안내를 받고 4층에 배정받은 숙소에 갔다. 르 꼬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는 방이었다.

복도에서 바라본 문과 복도 조명, 엘레베이터, 우편함 등은 반복되는 주거 유닛 속에서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로 다른 원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천장에 별도의 조명이 없어서 조금 어두웠지만 밝은 색의 천장과 반사율 높은 바닥 마감에 조명이 반사되어 공간을 인식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인공조명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색과 재료의 선택만으로 복도의 기능과 분위기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단순한 상가가 아니라 사회적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 중에 상업공간이 7층과 8층에 배치되어 있다. 현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층배치이지만 당시에는 아래층과 고층의 주거민들의 편의성을 위해 중간층에 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운영에 입주민들의 수요만으로는 유지가 힘들고 외부인의 접근성이 낮아 성공한 상업 기능보다는 건축적 실험의 상징적 요소로 평가되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서점과 인쇄소만 운영하고 있었다. 복도가 더 넓고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하여 주거층의 복도와는 차별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18층 옥상에 올라갔다. 건물 최상부 전체를 하나의 공공 광장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유치원과 야외 체육시설(트랙, 체조 공간), 수영장 등이 위치하고 있다. 노을이 펼쳐지는 시간에 올라가서 바다 배경의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지상의 광장을 옥상으로 끌어올린 시도였는데 수영장도 처음 계획보다 작게 지어져 활용도가 떨어지고 어린이 놀이터와 유치원도 현재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는 전망을 감상하거나 산책 및 휴식 위주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옥상까지 둘러보고 나서 건물 전체 모습을 담기 위해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전면의 광장에서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바라보니, 원색의 발코니가 반복되며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각 세대의 발코니 색은 집합주거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규칙적인 패턴으로 읽혀서 외관을 단조롭지 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필로티로 들어 올려진 1층은 건물의 무게감을 덜어내며 시선과 동선을 자연스럽게 통과시킨다.

1층 벽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고안한 모듈러(Modulor)가 새겨져 있었다. 인간의 신체 비례를 기준으로 한 이 척도는 유니테 다비타시옹 전체의 설계 기준이 되었고, 세대의 높이와 복도 폭, 창의 비례까지 이 체계 안에서 결정되었다. 거대한 집합주거를 계획하면서도 인간의 몸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옛날에 수직도시를 구상하고 이를 실제 건축으로 실현시켰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평면적인 주거의 집합이 아니라, 생활·이동·휴식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해결되는 시스템을 이미 수십 년 전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지금 보아도 여전히 실험적이었다. 시간을 앞서간 건축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세유를 끝으로 프랑스 여행기는 마무리되었다. 파리뿐만 아니라 각 도시에서 마주한 건축과 자연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었다.

좀 더 휴양지에 가까웠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와는 결이 다른 시간이었다.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건축과 도시 공간에 스며든 모습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