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파리 여행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어 세 번째 유럽도시 프랑스에 왔다. 우리나라보다 약 5.5배 크고 유럽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프랑스는 예술, 건축, 음식,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가다. 개인적으로 세계대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바로 옆나라인 독일이 더 클 거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독일보다도 프랑스가 1.5배나 크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해서 한 방향으로 돌아보기가 가능했는데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총 8개 국가/영토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는 여행 일정 중 여러 번 국경을 넘게 되었다.
다양한 볼거리 중에서도 우리 부부의 최대 관심사인 건축물을 중심으로 여행한 2024년 8월 말부터 10월 말 사이에 보름동안 여행한 프랑스 여행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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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일정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스페인 빌바오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우연히 만나 급격히 친해진 한국인 부부와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일정 때문에 빌바오에서 파리까지 900km가 넘는 이동을 하기로 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도 동행을 했던 부부인데 우리 부부랑 잘 맞는 부분이 있어서 여행정보도 얻을 겸 파리에서 잠시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랑은 다른 루트로 일 년 넘게 세계여행을 하고 있기도 했고, 우리보다 두 달 먼저 유럽에 도착해서 리스카를 타고 여행하고 있는 부부라서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번에 너무 장거리 이동이라서 중간에 쌰뗄레호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 자고 이동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Paris)와 또 다른 퐁피두센터가 있는 메스(Metz), 알프스산맥이 걸쳐있는 샤모니-몽블랑 (Chamonix), 너무 예쁜 동화 같은 도시 안시 (Annecy)와 베르동 (Verdon), 프랑스 남부의 최대도시 마르세유 (Marseille)를 여행했다.
2010년 첫 번째 프랑스 방문 때는 파리만 여행했었는데,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쉐미술관, 라데팡스와 몽파르나스타워 등 주요 관광지를 많이 돌아봤는데도 여전히 새롭고 볼거리가 가득했다.
파리 (Paris)
파리는 2010년에 친구와 함께 배낭여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이다. 비록 프랑스는 떨어졌지만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을 에펠탑 밑 스크린으로 보며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오리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바람을 이루게 되었다.
이번에는 2024 파리 올림픽이 열렸다. 올림픽을 직접 관람할 수도 있었지만, 올림픽 기간에 너무 많이 치솟은 물가를 피하려고 했고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올림픽 출전을 못해서 직접 관람하는 것에도 흥미가 떨어져 폐막 이후로 일정을 조정했다.
우리가 도착한 8월 25일은 이미 올림픽이 폐회하고 나서지만 곧이어 패럴림픽의 개막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도시 곳곳에 올림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 부부의 최대 관심사인 건축물들을 둘러보기에 프랑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오래된 건축물들은 잘 관리되어 있어 시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훼손된 느낌은 적었다.
특히 파리는 옛날에 지어진 건축물들과 현대 건축이 큰 충돌 없이 공존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노트르담 성당 등 오래된 건축물들도 현대의 건축물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시의 전반적인 스카이라인을 해치지 않았고, 그래서 거리를 따라 걸으면서 시대별 건축물들을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이런 환경 덕분에 여행 중 건축물을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고,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도 건물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느껴져, 우리의 파리 여행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라빌레뜨 공원 (Parc de la Villette)
원래 도살장(abattoirs)이 있던 곳이었고, 19세기 산업 시설이 있던 지역이다. 1980년대에 건축가 베르나르 츠미(Bernard Tschumi)가 재설계하여 현재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책에서도 많이 소개되는데, 대규모 산업 부지를 문화 공원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도시재생의 사례이다. 피크닉, 산책 등이 가능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많다.
폴리(folly)라 불리는 빨간 구조물들이 포인트로 공원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울타리나 문이 없어서 개방적인 것이 특징이지만 우리가 방문한 기간에는 올림픽 때문에 이곳에 Club France라는 팬 존(fan zone)이 설치되어 통제 중인 곳도 있었다.
동행부부와 잔디밭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공원 내부의 운하를 따라 산책로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마침 쨍한 햇빛이 비추는 날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 (Philharmonie de Paris)
라빌레뜨 공원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인 파리 필하모니로 이동했다. 라빌레뜨 공원 내에 위치한 파리 필하모니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인 장 누벨 (Jean Nouvel)이 설계한 건물로 2015년에 개장하여 많은 이슈를 남겼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이력이 있다.
장누벨은 필하모니 건설 예산이 처음 책정됐던 €173M에서 실제 개관 시 약 €386M으로 두 배 이상 오르는 예산문제로 필하모니 측에 소송을 당하자 부당하다는 맞소송까지 하게 되었다. 개관도 예상보다 2년이 늦어졌다고 한다. 결국에는 양측이 모든 법적 청구를 철회하며 합의했지만 대형 문화 프로젝트에서 건축가와 공공 기관 사이의 책임과 비용 분담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남아있다.
장누벨의 가장 일관적인 건축적 특징이 있는데 빛은 건축의 재료라는 것이다. 필하모니 파리에서도 외벽의 금속 타일과 비정형적인 표면을 이용해 시간대마다 다른 반사광을 만들고, 날씨에 따라 건물이 색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필하모니의 외관은 약 34만 개의 알루미늄 타일이 서로 다른 패턴으로 얽혀 있다. 건물 주변 바닥까지도 같은 패턴 흐름을 이어 놓아, 외관과 땅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설계 의도가 섬세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고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을지 짐작이 갔다.
이번엔 내부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내부의 음악홀의 설계도 대단하다고 해서 다음번 방문이 더 기대됐다.
아랍문화원 (Institut du Monde Arabe, IMA)
빛을 재료로 사용하는 장누벨(Jean Nouvel)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1987년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장 누벨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설계한 건축물이다.
프랑스와 아랍권 국가 간 문화·학술 교류를 위해 설립된 복합 문화기관으로 아랍 전통 건축의 무크나이(목재 격자 차양)에서 착안한 빛 조절 기계장치가 건물 전면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이다.
설치 당시에는 저절로 내부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했다고 하는데 기계 고장과 정비 비용, 부품 노후 등 문제로 현재는 자동 작동 기능이 대부분 멈춘 상태라고 한다. 지금은 장식적인 의미가 더 크고 반자동이나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어떤 행사가 있었고, 동양인 두 명의 방문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서 모든 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해서 아쉬웠다.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빌라 사보아는 건축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성지 같은 곳이다. 근대 건축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집이다. 인도에서 방문했던 찬디가르 도시를 계획하고 주요 관공서를 설계한,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축가이다.
1931년에 준공된 빌라사보아는 파리 외곽지역에 있어서 2010년에는 버스를 타고 어렵게 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직접 차를 끌고 가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빌라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Five Points of Architecture)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근대건축 5원칙이 실현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기둥식 구조 시스템이다.
무거운 건물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 1층의 벽을 없애 요즘은 흔하디 흔한 (1) 필로티를 만들었고, 실내에도 꼭 필요한 하중을 견뎌야 하는 벽들이 사라지자 (2) 평면이 자유로워졌다. 건물의 외벽들도 기둥들 덕분에 하중을 받지 않아 필요한 만큼 (3) 가로로 긴 창을 낼 수 있었고 (4) 자유롭게 외벽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철근콘크리트 기둥식 구조는 그 당시 많은 건물들로 채워져 자연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정원을 제공해 준 (5) 옥상정원을 가능하게 했다.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기에 평평한 지붕이 가능했다. 물론 기술적으로 미흡해서 초창기에는 방수나 단열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는 하나 개념자체는 매우 앞서 있었다.
스페인에서 가우디 건물투어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식적인 요소나 화려함 보다는 실용적이고 담백했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관심 있을 곳은 아니라서 한적함이 주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루브르박물관 (Louvre Museum)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루브는 박물관은 우리 부부 둘 다 경험이 있어서 외관만 둘러보기로 하고 갔었다. 모나리자 같은 핵심 작품들만 둘러보더라도 2~3시간이나 걸릴 만큼 규모가 크기 때문에 내부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많은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인파가 적어서 의아했는데 올림픽 행사로 인해 많은 경찰들이 곳곳을 통제하고 있었고 동선도 제한되어 굉장히 어수선했다.
1190년경 중세 시대에 방어 요새로 쓰이던 공간부터 여러 왕들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들이 쌓이며 왕궁으로 쓰였고, 현재의 루브르가 되었다고 한다. 고전적 석조 건물과 대비되는 현대적 건축재료인 투명 유리구조로 되어있고 아래에는 대규모 지하 로비(Carrousel du Louvre)가 연결되어 있다. 대비되는 건물이 프랑스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거 같았다.
가장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 중앙 광장(쿠르 나폴레옹 Cour Napoléon)에 배치된 입구 기능 중심의 구조물로 1989년 I. M. 페이(Ieoh Ming Pei)가 설계했다.
우리가 카타르 도하에서 방문했던 이슬람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유명한 건축가이다.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엄청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부정할 수 없는, 루브르의 대표적 건축 요소가 되었다.
1980년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비효율적이던 동선체계를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중앙집중형 출입구로 거대한 관람객 규모를 처리하기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박물관의 역사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기능적 문제 해결과 미래 지향적 건축 실험이라는 두 목적을 인정해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외국인 건축가가 역사적인 공간에 실험적인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20세기 후반 현대건축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건축물로, 기능을 밖으로 드러내는 특징을 가진 건축 물다. 유명한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설계하여 1977년이 완공되었다. 리처드 로저스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복합단지 프로젝트 Parc.1의 설계에도 참여한 건축가이다.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에스컬레이터나 설비 배관등을 건물 외부에 배치하여 마치 산업시설 같은 인상을 주는 건물이다. 퐁피두센터 또한 공장 같은 이미지 때문에 건축 당시 많은 혹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등 현재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들은 모두 당시의 평가가 좋지 못했던 거 같다.
퐁피두 센터 건물 앞 광장(Plaza)은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휴식과 만남의 장소로 쓰이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엘리트들의 예술공간인 미술관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라는 프랑스의 문화정책 전환의 상징적인 건물로도 평가받는다고 한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너무 귀여운 가족을 보고 또 파리에 다시 올 이유를 찾았다.
에펠탑 (Eiffel Tower)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설계한 에펠탑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다. 1889년에 완공된 에펠탑은 산업혁명 시대의 금속 구조 기술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이다.
이번에 글을 쓰며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있는데, 에펠탑이 한 가지 색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시대별로 다양한 톤으로 칠해졌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7년에 한 번씩 스프레이방식이 아닌 인부들이 직접 붓으로 칠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은 에펠탑은 원래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100주년 기념용으로 세워져 20년 뒤 철거하기로 했던 임시 건축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및 유럽 전역과 전신/무선 통신 가능한 안테나가 설치되고, 기상 관측과 바람 실험 등 다양한 과학적 실험에 활용되며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처음 우려와는 다르게 파리 시민과 관광객에게 점점 사랑받게 되어 철거되지 않았다고 한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이 잘 나온다는 비르하켐(Pont de Bir-Hakeim)이라는 철교를 찾아갔다. 항상 사람이 많아서 사진 찍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한적해서 사진 찍기 좋았다.
에펠탑을 가까이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샹드마르스(Champ de Mars)와 트로카데로 광장 일대가 올림픽 때문에 대규모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잔디밭에 앉아 반짝이는 에펠탑을 감상하려고 했는데 광장도 못 들어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통제 때문에 좋았던 점도 있었다. 사방에 경찰들이 있어서 소매치기는커녕 잡상인들도 자취를 감춰 정말 쾌적한 환경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에펠탑 근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에펠탑 모형 기념품을 파는 한국말 잘하는 청년으로 알려진 에펠탑 파코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해가 지고 불이 켜진 에펠탑을 멍하니 바라보며 천혜의 자연환경 말고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건축물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올림픽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오륜기가 새겨진 에펠탑을 볼 수 있던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루브르박물관을 관광한 날은 숙소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도시밖에서는 주차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보니 차량이동이 기동성이나 자율성이 높지만, 도심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건물들 외에도 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들이 많아서 눈이 즐거웠다.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발 결한 아래 건물은 반사율을 극대화해서 하늘과의 경계선이 없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각도에 따라 반사되는 건물이 절묘하게 비춰서 투명하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신한 익스페이스 명동역점에 사용된 적이 있는 곡면유리 건물도 인상 깊었다. 라 사마리텐(La Samaritaine)이라는 이름의 리노베이션 건물인데 일본 건축가 세지마 카즈요(Kazuyo Sejima)와 니시자와 류에(Ryue Nishizawa)의 파트너십 건축사사무소 SANAA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역시 건축계 최고 권위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2010년에 수상한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다.
전통 석조건물이 많은 파리의 거리에서 무거운 재료 대신 투명하고 물결치는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가볍고도 리듬감 있는 입면으로 차별화한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재료가 진화할 때 건축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자 결과물이었다.
물결치는 형태를 유리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보며 빌라 사보아를 시공할 당시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법에 대한 제시를 했던 것처럼 재료 자체의 진화가 건축가의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는 가장 큰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입면에 대한 사례를 찾을 때 많이 봤던 건물이 파리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관광 명소도 아니고, 안내판 하나 없는 그저 평범한 주거 건물이었지만 일회성으로 쓰이고 사라진 장식이 아니라 2004년부터 현재까지도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직접 보고 싶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건물을 실제로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각 층 발코니를 따라 동일한 형태의 화분이 촘촘하게 배치돼 있고, 식재가 만들어내는 깊이감 덕분에 전체 매스가 단조롭지 않게 보였다. 화면으로만 보던 단순한 반복 패턴이 현장에서는 주변 수목과 섞이면서 더 자연스럽게 읽혔고, 실제 주거 건축에서 녹지 요소를 어떻게 입면으로 끌어오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리와 공사비문제로 현실화되기 어려운 유형의 건축물이라서 그런지, 이런 평범한 생활공간 속에서 실험적인 입면이 구현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몽마르뜨 언덕에 갔다가 예전처럼 팔찌를 억지로 채우는 사람은 못 만났지만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 당황한 기억만 빼면 모든 것이 좋았다.
미식의 나라답게 훌륭한 음식들을 맛보았고 한식집들과 한국식자재를 파는 마트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우리 같은 여행자에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친구와 배낭여행을 했을 때, 값싼 와인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다음 날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 소중한 하루를 날렸던 기억이 났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라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바쁘게 발도장 찍는 데만 의미를 두고 돌아다녔었다.
이번 파리 여행은 우리에게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직접 눈으로 보고 이해하며 시간을 쓰다 보니 하루하루의 밀도가 훨씬 높았던 것 같다.
다음 여행은 대도시 파리를 떠나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에서 느낀 여행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