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시작, 포르투
리스본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이 된 도시 포르투로 향했다. 서울에서 포항정도의 거리여서 다이렉트로 이동은 가능했지만 마침 가는 길에 유명한 관광지들이 있어 경유해서 가기로 했다.
오비두스 (Óbidos)
포르투갈 중서부, 리스본에서 차로 한 시간 십 분 정도 걸리는 중세시대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좁은 돌길, 흰 벽의 집, 아름다운 꽃들이 포르투갈의 전통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람들을 따라서 걸어가니 마을 입구가 나타났다. 처음 마주한 장면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꽃들이었다.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배경으로 해서 인증샷을 찍는 포토존이라고 한다. 계절마다 테마가 바뀌는데 우리가 갔던 8월 중순은 아름다운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니 중세 시대 성벽 안을 그대로 보존한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는 마을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얀색 벽의 건물들이 작은 골목길을 만들어 파란 하늘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상점들의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수많은 예술품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오비두스는 왕비의 마을(Vila das Rainhas)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포르투갈 국왕이 왕비에게 오비두스마을을 선물한 이후 약 6세기 동안, 역대 포르투갈 왕비들이 이곳을 사유지처럼 관리하고 발전시킨 덕분에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아름답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기념품 중 하나인 통조림도 오비두스에서 구매했다. 통조림에 연도가 적혀 있는데 우리 출생 연도가 적혀있는 통조림을 기념품으로 사고 맛있다는 후기가 있던 통조림 몇 가지를 안주용으로 구매했다. 랍스터 맛 통조림은 거의 50유로 정도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와인과 함께 먹었는데 맛은 있었으나 가격을 생각하면 아쉬웠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성이 나타나는데 너무 붐비는 골목길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들어가 봤다. 중세시대풍의 조각들과 장식들이 드라마 세트장에 온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나자레(Nazaré)
오비두스에서 30분 정도 달리면 빅웨이브로 유명한 나자레가 나온다. 지구마블세계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박준형과 곽튜브가 방문했던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가 치는 해변이 있는 곳이다. 최근 2020년에는 26미터가 넘는 큰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한 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해변에 직접 내려가진 않고 빅웨이브 뷰포인트가 있어서 (Big Wave point Miradouro da Praia do Norte)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십여분 정도 걸어갔다. 길 끝 절벽 위에 빨간색 등대가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서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절벽에 다다르자 입이 떡 하고 벌어질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8월의 중순, 한 여름이어서 그런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등대를 기준으로 절벽 밑, 왼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을 즐기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높은 파도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서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아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안타깝게도 나자레의 빅웨이브 시즌은 10월부터 3월이라, 기대했던 거대한 파도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여행 중간에 이 작은 어촌 마을을 들른 건 참 의미 있는 일이었다.
포르투 (Porto)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이 된 도시이다. 리스본이 정치와 행정의 중심도시라면, 포르투는 역사와 경제의 중심도시이다.
오비두스와 나자레를 거쳐 포르투에 도착한 첫날은 숙소에서 쉬고 다음 날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포르투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도시마다 머무르는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그 도시의 기억도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도착한 날부터 날씨가 흐려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포르투 여행 첫째 날을 빼고는 화창해서 예쁜 하늘과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서울의 강남구보다 약간 더 큰 면적인 포르투는 도심 밀도가 높고, 언덕과 도로가 복잡해 실제 체감 크기는 더 크게 느껴졌다. 도시 중심부는 도보로도 이동 가능하며, 관광 구역 대부분이 3~4km 안에 모여 있었다.
마제스틱 카페(Café Majestic)
포르투에는 해리포터 팬들이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는 곳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마제스틱 카페(Café Majestic)이다. 1920년대에 문을 연 아주 오래된 카페로 당시 상류층들이 즐겨 찾던 고급 카페였다고 한다.
1990년대 초,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포르투에 영어 교사로 살던 시절 자주 들렀던 카페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초안을 이곳에서 집필했다는 소문이 나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정작 작가 본인은 부정했다고 한다.
레루 서점(Livraria Lello)
1906년에 오픈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마제스틱 카페와 마찬가지로 영국 작가 J.K. 롤링이 포르투에서 거주하던 시절 자주 방문한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그 영향으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일부 영감을 얻었다는 설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현재는 단순한 서점이 아닌 관광 명소로 운영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해야지 들어갈 수 있어서 안에 들어가 볼 예정이라면 꼭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입장권이 필요한 줄 몰라서 처음 갔을 때는 표가 매진이었다.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위치한 붉은색 나선 계단과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다. 계단은 실제로는 두 개의 구조물이지만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으며, 천장 유리에는 “Decus in Labore(노동의 명예)”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부 서가와 조명, 목재 장식은 대부분 수공예로 만들어졌다.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워낙에 사람들이 많아서 구경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나선형 계단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독사진을 찍기란 불가능했다. 기념품으로 레루 서점이 새겨져 있는 어린 왕자 책 한 권을 샀는데 책값에서 입장료 8유로를 제외하고 계산해 준다.
서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바로 앞 광장에서 길거리 공연도 많이 하고 쇼핑몰도 있어서 관광하기 좋았다.
세랄베스 미술관
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
우리가 유럽여행을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본고장에서 그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들의 초기 활동 무대나 세계적 명성을 얻게 해 준 대표작들은 대부분 자신이 자리 잡고 활동하던 지역에 남아 있다. 그래서 유럽 여행에서는 각 건축가의 출발점이 된 작품, 지역성과 연결된 설계 방식, 초기 작업의 실험적 면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1999년에 개관한 세랄베스 미술관은 알바로 시자(Álvaro Siza Vieira)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르투 출신 건축가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물이다. 우리나라 파주에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인물이다.
세랄베스 공원 안에 위치한 미술관은 자연과의 통합을 위해 높낮이가 있는 지형을 따라 설계된 건물이어서 내부 동선도 재미있었다. 중간중간에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풍경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자연채광이 알바로 시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돌아보았다.
과한 장식 없이 단순한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백색 외벽의 건물은 알바로 시자 건축 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공원 입구에서 하얀 벽을 따라서 건물내부로 들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1인당 24유로의 입장권에는 미술관과 정원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부에서 보았던 단순하지만 절제된 모습은 내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직전에 보았던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빌바오 구겐하임, 발렌시아의 칼라트라바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화려한 장식이나 강한 조형미는 없지만, 바로 그 절제된 담백함에서 나오는 힘이 있었다.
방문자가 지루하지 않게 높은 층고와 좁은 복도가 반복되면서 공간의 크기와 높이를 다르게 설계했다. 중간중간 볼 수 있었던 커다란 창은 세랄베스 공원이나 식재들을 배경으로 하는 액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자연광은 내부를 부드럽게 밝혀주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당시에는 쿠사마의 설치작과 회화, 드로잉등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세랄베스 미술관은 규모가 크고, 전시 외적으로도 볼 요소가 많았다. 내부가 복잡하지 않아 동선은 직관적이지만, 쿠사마 전시와 알바로 시자의 드로잉이나 모형 등, 작업물을 전시해 놓은 공간도 있어서 세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금방 지나갔다.
레카 수영장 (Piscina das Marés)
Leça da Palmeira 해변가 인근, Matosinhos 자치구에 위치해 있는 야외 수영장이다. Álvaro Siza Vieira(알바로 시자)가 1960년대 초반 설계해 1961-66년 사이 완공되었다.
바다와 맞닿은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성인용 풀과 어린이용 풀, 탈의실·샤워실·카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수영장의 수면이 바다와 거의 같은 높이로 설계되어 인공 풀장과 자연의 바다의 경계가 흐려지는 감각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큰 파도가 칠 때, 수영장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일곱 시쯤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인근 도로가에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주차는 쉽게 할 수 있었다. 산책로가 해안을 따라 넓게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하고 있었다.
레카 수영장은 5월부터 9월까지만 운영하는데 7시까지만 운영한다. 물에는 안 들어가도 들어가서 사진만 찍으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도착했다.
다행히 도로에서 내부가 보여 바다를 배경으로 수영장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알바로 시자는 기존 해안의 암반 지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 틈 사이에 최소한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삽입했다.
수영장은 자연 바닷물을 끌어와 사용하며, 바닷물이 유입되어 순환되는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계절과 날씨에 따라 수영장의 색과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는 점이 특징이다.
세하 두 필라르 전망대
(Miradouro da Serra do Pilar)
도우루 강 (Douro River)과 포르투 시내, 돔 루이스 1세 다리(Dom Luís I Bridge)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히 일몰과 야경이 아름다운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올라가기 전에 돔 루이스 다리 (D.Luís I Bridge) 바로 앞에 노상주차를 하고 다리가 잘 보이는 뷰포인트로 향했다. 돔 루이스 다리는 상부데크와 하부데크로 나뉘어 있는데 보행자와 메트로만 지나다닐 수 있는 상부데크에 많은 사람들이 해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에게 기대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낭만이 넘쳐흘렀다.
다리 건너기 전에 위치한 모루정원도 유명한 노을 맛집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잔디밭과 벤치가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가 일몰 보기 좋은 장소로 많이 모인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세하 두 필라르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돔 루이스 다리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전망대로 올라가는 경사로가 나온다. 난간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는 청춘들을 지나 십 분 정도 올라가면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Serra do Pilar Monastery)이 나오는데 바로 앞 넓은 공간이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간대의 세하 두 필라르는 소리가 거의 없고, 멀리서만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도시의 지붕들이 서서히 어둡게 물들고, 다리 위의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면서 포르투의 저녁 분위기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여행 중에는 계속 이동하고 새로운 걸 보느라 항상 정신없고 신경 쓰이는 것도 많은데,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묘한 여유가 생겼다.
8월 중순이었는데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다. 챙겨간 긴팔을 입고 난간에 기대어 해가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유럽에서 머무를 수 있는 3개월 중 무려 한 달 가까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머물렀다. 그만큼 가는 도시마다 너무 좋았고 이후에 여행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어느 곳을 가도 대도시의 빠른 속도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여유가 먼저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이동이 반복되는 일정 속에서도 크게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 여행지는 막 올림픽이 끝났던,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프랑스 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