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과 포르투갈 남부 여행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이베리아반도 남부 해안을 따라 포르투갈로 향했다. 포르투갈은 14년 전에 유럽 배낭여행 때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라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천만명이 약간 넘는다고 한다. 대서양과 맞닿아 있어 대항해시대를 주름잡았던 스페인과 함께 해양 개척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아주 뚜렷한 나라였다. 남미의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앙골라, 아시아에 마카오까지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던 나라인지 실감이 난다.
2024년 8월 중순, 마치 신혼여행을 온듯한 기분이 들었던 10일간의 포르투갈 여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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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일정
스페인 세비야에서 베나질 동굴을 보기 위해 포르투갈 남부로 향했다. 남부에서 유명한 휴양도시인 알부페이라를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쉬웠다. 이후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을 여행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오비두스와 세상에서 가장 큰 파도가 친다는 나자레를 거쳐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로 갔다.
세비야에서 리스본까지 한 번에 이동하기에는 너무 멀어서 중간 경유지를 찾다가 베나질 동굴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포르투갈 남부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동 거리도 적당해서 별 무리 없어 보였는데 국경을 넘으면서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국경을 넘었는데 대부분 무료였던 스페인 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다가 포르투갈이 유료도로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포르투갈내에서 고속도로등 유료도로를 이용하려면 차량등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포르투갈에서 빌리는 렌트차량은 당연히 등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프랑스 리스카여서 등록이 필요했다. 우리같이 당황한 듯한 차가 톨게이트에서 무리하게 앞에 끼어들어 더 당황했다.
일단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바로 오른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신용카드와 차량을 등록하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니 모든 걸 미리 알 수도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결국에는 다 된다. 나 같은 대문자 J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단 마음을 다스린 다음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다 된다.
페하구도 (Ferragudo)
외국인들까지 포함한 인구수 약 2,000여 명의 작은 어촌이다. 괜찮은 숙소를 검색하다가 베나길 동굴투어를 시작하는 포르티망(Portimão) 항구와 멀지 않아 하루 머물기로 했다.
다음날, 미리 예약한 베나길 동굴 스피드보트 투어를 하러 포르티망 항구로 갔다.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과 잔잔한 파도가 너무 예쁜 날씨였다. 업체 부스에 얘기하고 잠시 대기한 후에 보트를 타러 갔다.
우리가 예약한 투어는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약 두 시간가량 알부페이라의 절벽 해안을 둘러보는 투어다. 절벽해안을 따라 형성된 해변에는 더위를 피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황금빛 절벽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윈도우 배경 화면에도 등장하는 베나길 동굴을 향해 달려갔다.
가장 유명한 베나길 동굴 말고도 인근에는 파도 침식과 풍화작용 등 자연의 힘에 의해 생성된 동굴과 천창이 몇 군데 더 있다. 천장에 난 구멍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바다에 비치는 모습은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황홀했다.
수백, 수천 년이 흐른 뒤에는 지금 모습과 또 달라져 있을 동굴의 모습을 쉴 새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첫 번째 동굴탐험을 마치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절벽사이의 작은 해변을 지나, 축구감독 무리뉴 등 유명인사들의 별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이빙을 즐기며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다 보니 베나길 동굴에 도착했다.
동굴 안의 규모가 크지 않아 우리가 탄 배 사이즈만 진입이 가능했다. 주변에는 많은 배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직접 카약을 타고 나온 무리들도 많았다. 우리 배 캡틴이 펭귄이라고 해서 쳐다봤는데 주황색 조끼를 입고 노란 카약을 탄 사람들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동굴로 진입하는데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이전에 본 동굴보다 천장의 구멍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더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캡틴이 보트에 탄 인원들을 돌아가며 사진 찍어주고 짧은 동굴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 한가운데 보트를 정박했다. 투어 프로그램에 바다 수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애초에 수영복을 입고 가지 않은 우리 부부만 제외하고 모두 대서양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집트 다합에서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땄지만 스노클 장비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건 아직 무리다.
베나길 동굴 투어를 마치고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을 향해 이동했다. 세 시간이 채 안 되는 거리여서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리스본 (Lisboa, Lisbon)
리스본 근처에 다다르니 많은 표지판에 Lisboa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영어 표기가 리스본이고 자국에서는 리스보아라고 읽고 쓴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영향력으로, 우리가 방문했던 요르단의 암만이나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처럼 로마의 기원과 상징인 7개의 언덕 위에 세어진 도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서울의 강남처럼 경사진 언덕이 많았다.
서울 면적의 약 1/6 크기인 리스본에서 우리는 차량을 주차해 두고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관광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웬만한 관광지는 숙소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할 정도였다.
숙소 근처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상황이 비슷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허가가 나지 않을 정도로 좁은 주차장은 한 번에 경사로를 빠져나가기도 힘들었고 주차구획도 좁았다.
타임아웃마켓 (Time Out Market)
리스본 첫 번째 관광은 타임아웃마켓이다. Time Out Market은 영국의 문화·여행 매거진 Time Out이 도시의 최고급 음식과 음료·문화를 한 지붕 아래 모아낸 푸드홀 형태의 공간이다.
그중 첫 번째로 오픈한 곳이 바로 2014년에 문을 연 Mercado da Ribeira였다. 리스본의 Time Out Market은 2층 규모 약 10,000㎡ 공간에 40곳 이상의 레스토랑·카페가 들어서 있다.
일행과 함께 간다면 자리를 잡아둘 사람이 먼저 따로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시킨 음식을 들고 한참 동안 빈자리를 찾아 헤맸다. 해산물과 에그타르트 등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있어서 고르는 재미가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과 합석해 먹는 분위기도 좋았다.
엘엑스 팩토리 (LX Factory Sunday Market)
버스를 타고 매주 일요일에 플리마켓 형태로 운영되는 LX팩토리로 이동했다. 리스본에 도착해 관광을 시작한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다. 여행 중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은 더욱 특별하다.
플리마켓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이 띄었던 건 거대한 현수교였다. 1966년, 완공 당시의 명칭은 독재자 살라자르 이름에서 유래한 Salazar Bridge였다고 한다.
하지만 1974년 4월 25일, 총을 든 군인들에 맞서 카네이션으로 대응한 이른바, 카네이션 혁명으로 새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이제 살라자르의 상징은 지우자는 의미로 다리 이름을 4월 25일의 다리(Ponte 25 de Abril)로 변경했다고 한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예쁜 빈티지 옷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리고 유니크한 수공예품 등 감각적인 물건이 많았다. 리스본의 로컬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제품들이 다수 있다고 하니 리스본 여행 중 일요일이 껴 있다면 방문을 추천한다.
인더스트리얼한 공간 안에 거대한 책장과 자전거를 타고 날고 있는 사람 형상을 한 예술 설치물로 유명한 Ler Devagar 서점도 사진 찍기 좋은 스팟이다. 원래 인쇄공장이었던 곳이라 천장이 높고 남아있는 철제 구조물들을 볼 수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Mosteiro dos Jerónimos)
벨렝 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 (UNESCO)에 등재된 수도원이다. 오후 4시 넘어서 갔는데 당일 표 판매가 끝나서 수도원을 보지 못했지만 성당은 무료 관람이 가능해서 잠깐 보고 나왔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옆에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이라는 유명한 에그타르트집이 있는데 흔히 말하는 원조 맛집이다. 리스본에 머무는 동안 두 번 갔는데 갈 때마다 많은 인파 때문에 줄을 섰다.
18~19세기 초,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수도사들이 직접 달걀흰자를 이용해 옷에 전분을 먹이거나, 포도주를 맑게 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기 위해서 옷을 빳빳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 달걀흰자가 사용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른자가 항상 남았는데, 남은 노른자를 활용하기 위해 수도사들이 노른자와 설탕, 우유로 만든 디저트를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오늘날의 에그타르트의 원형이라고 한다.
리스본 대지진 후 수도원이 어려워지자, 레시피를 인근 제과점에 넘겨서 판매를 시작했고, 그 제과점이 바로 지금의 Pastéis de Belém이라고 한다.
발견기념비 (Padrão dos Descobrimentos)
수도원에서 걸어서 오분거리에 위치한 발견기념비는 1960년에 완공된 기념비로, 포르투갈의 항해자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로 진출했던 대항해시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한 여름의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기념탑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 쪽에 몰려 있었다.
기념비는 거대한 배의 선두 모양으로 디자인되어있다. 맨 앞에는 대항해시대를 이끌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엔리케 항해왕자 (Infante Dom Henrique)가 서 있고, 그 뒤로는 30여 명의 탐험가, 과학자, 선교사, 예술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념비 앞으로는 해양선박들도 지나다닐 만큼 큰 규모의 타구스강(Tagus River)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저 멀리 4월 25일 다리도 보이고 대형 기념탑이 마치 항구도시의 앞바다 같은 모습이다. 지구오락실에서 단체로 자전거를 타며 게임을 했던 그곳이다. 수륙양용 버스 히포도 이곳을 지나다닌다.
기념비 앞 광장 바닥에는 포르투갈이 세계를 탐험했던 기록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방문했던 년도와 국가명이 적혀있는데 1514년에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마카오까지 진출한 것이 놀라웠다.
벨렝탑 (Torre de Belém)
기념탑에서 강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대항해시대 탐험선들이 출항하던 상징적 장소인 벨렝탑이 나온다. 1520년에 지어진 해상방어 요새로 지금은 지상과 연결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강 한가운데 작은 섬 위에 있었다고 한다. 앞쪽에 넓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광장이 있어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쉬기 좋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벨렝탑 쪽에 넓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새삼스레 진짜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램 (Eléctrico)
리스본( Lisboa)의 트램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언덕을 오르내리는 낭만적인 이동수단으로 도시의 상징이자 가장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다. 언덕과 좁은 골목이 많은 지형적 특징 때문에 말이 끄는 마차의 형태로 시작하여 전기로 움직이는 현재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1920~1930년에 쓰던 전차를 개조했는데 우리도 노을을 보러 갈 때 트램을 이용했다. 얼마 전 안타까운 사고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그 노란색 트램이었다. 뒤늦게 새로운 안전장치로 개선한다는 기사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카르무 수도원 (Carmo Convent)
지붕이 없는 카르무 수도원은 1755년 대지진의 흔적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유적이다. 1755년에 추정 리히터 규모 8.5~9.0의 대지진으로 리스본 인구 약 20만 명 중 6만 명 이상 사망하고 도시 건물의 80% 이상 붕괴되었다고 한다. 이후 발생한 해일(쓰나미)과 대화재가 피해를 키웠는데,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 바로 이 카르무 수도원이다.
처음엔 그냥 오래된 수도원이라 생각했는데, 내부에 들어서자 그곳은 시간이 멈춘 자리였다. 입구 쪽에 계단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천장대신 하늘로 뒤덮인 공간에 빛이 내리쬐는 걸 감상하고 있었다. 여전히 기도하는 듯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안쪽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지진과 함께 사라진 리스본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는 유물들, 그리고 고딕 양식의 세밀한 조각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카르무 수도원은 직접 눈으로 대지진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산타 주스타 전망대 (Elevador de Santa Justa)
처음 멀리서 봤을 때, 마치 19세기에 지어진 파리의 에펠탑 일부를 떼어와 세워놓은 듯한 철제 구조물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에펠의 제자가 설계했다고 한다.
1902년에 지어진 이 철제 엘리베이터는 약 45미터 높이로 두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저지대와 고지대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한 번 타볼까 하고 기웃거렸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프라사 두 코메르시우 (Praça do Comércio)
산타 주스타 전망대를 지나 타구스 강 쪽으로 수많은 레스토랑과 상점들을 지나쳐 쭉 내려오면 리스본의 최대규모의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은 ㄷ자 형태로 건물들이 감싸고 있으며, 광장이 타게스 강으로 완전히 열려 있는 구조이다.
광장에 들어서려면 아우구스타 스트리트 아치 (Arco Triunfal da Rua Augusta)를 지나가야 한다. 프라사 두 코메르시우(Praça do Comércio)의 북쪽 입구를 장식하는 웅장한 아치형태의 개선문인데, 단순한 도시의 문이 아니라, 리스본이 폐허에서 다시 일어섰음을 상징하는 기념비라고 한다.
세계여행의 마지막인 유럽국가들을 여행하며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은 기념품을 샀다. 부피가 크지 않은데 예쁘고 유용한 아이템이 많았다.
Claus Porto에서 향이 좋은 고체비누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Cutipol Portugal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구경했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저렴했지만 가족들 선물까지 생각하다가 예상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포기했는데 우리 거라도 사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는 아이템이다.
산타루치아 전망대 (Miradouro de Santa Luzia)
트램을 타고 경사를 올라 도착한 산타루치아 전망대는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야경명소 중 하나다. 노을이 질 무렵 도착했는데 굉장히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Miradouro das Portas do Sol)
산타루치아 전망대 바로 옆에는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가 있다. 구분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바로 붙어 있다.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노을을 보기 위해 노상카페의 자리를 찾는데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자리를 잡고 맥주와 에그타르트를 시켜놓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붉은색 기와와 파스텔톤의 건물이 노을과 조화를 이룬 모습에 찍는 사진마다 감탄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도시 중에 가장 예뻤던 도시였고, 다시 생각해 봐도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파울라 헤고 뮤지엄
(Casa das Histórias Paula Rego)
리스본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40분 정도 차로 달리면 카스카이스 (Cascais)라는 지역이 나온다. 그곳에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건물이 있어서 포르투로 이동하기 전에 마지막 리스본 일정으로 가게 되었다.
2009년에 완공된 Paula Rego Museum은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 여성 화가인 파울라 헤고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영국 런던에서 주로 활동했고 여성의 삶·억압·권력관계를 강렬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거대한 두 개의 붉은색 콘크리트 매스가 인상적인 이 뮤지엄은 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가 설계한 작품이다. 2011년에 건축계에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경기도 파주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설계한 포르투갈 출신의 유명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제자이자 파트너로 둘 다 포르투갈 현대건축의 두 기둥으로 불린다.
건물 외관 자체가 멀리서 봐도 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두 개의 피라미드형 탑이 위로 솟아 있고, 붉은색 콘크리트 매스가 숲의 녹색, 하늘의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일반적인 미술관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공간감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바닥은 카스카이스 지역에서 나는 회색-청색 계열의 대리석이 깔려 있고, 벽은 거의 흰색이라 작품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외부에서 봤을 때 큰 두덩어리의 매스 꼭짓점에는 천창이 설치되어있어 은은한 자연광이 전시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전시 동선을 따라 관람을 마치면 카페가 나온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큰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에 누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시원함 바람을 맞으니 잠이 솔솔 왔다.
처음 여행한 포르투갈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았다.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의 복잡함이 아니라서 좋았고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돌바닥은 차량의 이동도 힘들고 캐리어 끌고 다니기에도 불편했지만 느려진 속도로 인해 리스본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골목을 돌 때마다 바다가 나타나는 순간들이 그 어떤 화려한 도시의 풍경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