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산책로와 유럽 첫 캠핑
유럽은 쉥겐조약이라는 협정을 맺어 국가 간의 이동이 자유롭다. 그래서 아침에는 프랑스, 점심은 룩셈부르크, 저녁은 벨기에에서 먹는 일정이 가능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우리가 머물 수 있는 90일 중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을 써버려서 뒤에 남은 일정이 촉박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첫 번째 유럽여행에서도 벨기에를 여행하지 못하고 브뤼셀에서 기차로 경유만 했는데 이번에도 29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가기 위한 경로에서 28번 독일에 밀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돌며 미리 데카트론에서 준비한 캠핑용품을 개시도 할 겸 벨기에를 또 패스해야 하는 아쉬움에 괜찮은 27번 벨기에 캠핑장을 찾아서 가기로 했다.
25번 프랑스 메츠에서 퐁피두센터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인 룩셈부르크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이번 유럽여행 첫 번째 캠핑을 즐기러 벨기에에 갔다.
국가 간 이동이지만 25번부터 27번까지 총 이동시간이 약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비교적 짧은 동선이었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룩셈부르크 (Luxembourg)
우리에겐 크라잉넛의 노래로 더 익숙한 룩! 룩! 룩셈부르크는 제주도의 약 1.4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하지만 유럽 주요 금융허브로 펀드·은행·자산관리 규모가 매우 커서 준수한 총 GDP를 유지하고 있고, 적은 인구수 덕분에 세계 1인당 GDP 순위에서는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이다.
이 작은 국가는 오늘날 우리가 국경 검문 없이 현재 27개국의 유럽 여러 나라를 넘나들 수 있게 만든 쉥겐 협정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다. 1985년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5개국이 최초로 참여해서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쉥겐(Schengen)에서 맺은 협정이 바로 쉥겐 협정이다.
룩셈부르크의 수도인 룩셈부르크 시(Luxembourg City)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슈망 드 라 코르니슈(Chemin de la Corniche)가 있다고 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 중심의 플라스 기욤 2세 광장 아래 지하공영주차장이 있어서 주차를 하고 걸어서 투어를 시작했다.
슈망 드 라 코르니슈는 절벽 위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로,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의 지형과 역사, 풍경을 한 번에 보여주는 장소다. 성벽 아래로 회색지붕의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을과 알제트 강(Alzette River)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슈망 드 라 코르니슈는 약 1km 남짓한 길이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동선이 완만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고, 성벽과 협곡, 하부 도시 풍경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산책로에 맞닿아 있는 집들 중 일부는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경치 좋고 여유로운 이곳에서 하루 숙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벨기에 (Belgium)
스치듯 지나간 벨기에에서의 캠핑장 기록이다. 당일에 예약해서 찾아간 캠핑장으로 Sandaya Camping La Clusure (라 클뤼쇠르)라는 캠핑장이었다. 숲과 계곡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자연형 캠핑장으로 프랑스와 벨기에에 캠핑체인이라고 한다. 수영장 등 시설도 좋다는데 해가 질 무렵 도착했고 약하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부대시설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수많은 데카트론을 방문하여 차박을 위한 자충매트와 차뒤에 연결할 텐트, 차량용 냉장고와 식기류, 테이블과 캠핑의자 등을 샀었고 오늘 드디어 개시를 하는 날이다.
유럽 캠핑 여행 카페에는 우리처럼 차량으로 유럽을 이동하며 캠핑 장비를 사용한 뒤 양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일정과 동선이 맞는 경우라면 중고로 구입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우리의 이동 경로와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대부분의 장비를 새로 구매했다.
유럽의 숙박비를 고려하면 계산은 비교적 단순해진다. 하루 숙박 비용으로 캠핑장 이용료와 식비 일부를 충당할 수 있고, 며칠만 차박을 해도 전체 여행 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캠핑은 낭만과 현실적인 선택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도착해서 급하게 텐트 치고 된장찌개 끓이고 고기 굽고 와인 한잔 하느라 기록할 정신이 없었다. 첫 차박을 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대형 캠핑카들과 이어진 대형텐트들이 마치 집을 옮겨다 놓은듯했다.
우리의 첫 차박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뒷좌석을 접었을 때 평탄화가 불가능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우리 옷들로 채워 넣는 것이었다. 그 위에 자충 매트를 깔고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침낭을 덮고 잤다. 8월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앞으로의 캠핑에 더 준비할 것들이 생겼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의 캠핑카 여행, 그리고 미국 서부에서의 캠핑카 여행과는 다르게 이번 유럽에서의 첫 차박은 나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 평소의 나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캠핑은 안정성과 효율과는 거리가 먼 여행 방식이었다.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불안감, 텐트를 치고 다시 정리하는 과정, 밖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물을 뜨러 오가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일들까지 모두 번거롭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여행 중에는 가능한 한 단순한 선택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캠핑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평소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와이프의 영향이 컸다. 익숙한 방식에서 한 발 벗어나 보는 경험이 여행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그동안의 여행에서 반복해서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느꼈던 성취감과 지금 느끼는 뿌듯함은,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 반드시 편안함과 효율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