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가 너에게 그동안 만만했던 거니?
‘내가 그동안 너무 화를 안 내고 지냈던 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독이 되었던 걸까?’
‘말다툼하기 싫어서 공감과 이해를 하고 넘어간 것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냥 웃고 넘어간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며칠 전 직장동료 C에게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 난 그다지 화끈한 인싸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깝게 지내는 소수의 친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인기인에 속해.
내 TMI를 얘기하자면 INFJ이지만 극 I도 아니고 나름 재미있고 상담도 잘해주고 언제든지 놀러 오면 얘기를 잘 받아주는 언니로 통해. 가끔 내가 바보스러운 짓을 하더라도 사람 냄새난다고 나는 동료나 동생들이 언니라고 칭찬도 해주고 좋아해 주기도 해. 그렇게 좋게 얘기해 주고 편하다고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나는 감사하게 생각해.
어찌 됐건 간에 C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정말 곰곰이 나를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는 누구에게라도 마음이든 몸이든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하는 성향이라서 웬만해서는 공감하고 이해하고 마음의 상처받지 않게 상대방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나름 용기를 준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직장동료 B가 나에게 서운하다는 거야.
‘응? 내가 B에게 서운하게 한 것이 뭐가 있지? 혹시 너 알아?‘ C에게 물어봤거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평소와 똑같이, 우리에게 한 거랑 별다르게 한 것이 없는데?
어느 날 일 보러 C가 복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우연히 B를 만났는데 업무 얘기하다가 내 얘기를 했다는 거야.
‘○○이 언제부턴가 내가 인사를 하는데 잘 받아주지도 않고 무시해. 같이 점심 식사 하는데 말도 안 하고 시큰둥하고, 메신저로 차 한잔하자고 했는데 답장도 없고 속상해.’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누가 내 뒤통수를 친 것처럼 멍하고 두 눈이 껌뻑껌뻑, 내 얼굴의 인상이 있는 대로 찌그러지고 있었어.
‘나에게 한 얘기 맞아?.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정말 그렇게 얘기했다고?’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어.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서운하다고 직접 나에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직장동료에게 이야기해서 나에게 전해 달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한 건가?
어이가 없었어. 나도 일일이 다 얘기하자면,
첫 번째. 몇 달 전으로 거스른 시간이야. 아침 출근 시간에 늦을까 봐 직장의 정문을 지나 부랴부랴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뛰어가는데 맞은편에서 B가 나를 보고 오는 거야. 그래서 난 출근 인사를 얼른 하고 사무실로 가려는데 갑자기 나를 붙잡아 세우고 별일 아닌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오랫동안 들을 수가 없어서 미안한데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 가려는데 계속 붙잡아 두고 얘기를 해서 알았다고 하면서 일단 사무실로 들어갔어.
두 번째. 하루 전날 연차 쓰고 그다음 날 출근해서 업무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B가 내 사무실로 와서 아침 인사를 하니 정신없이 업무 시작할 준비 하면서 웃으면서 같이 아침 인사를 했어. 그러면 된 거 아니야?
바쁘게 서류를 뒤적뒤적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계속 B가 어제 있었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거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순간,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속으로 난감해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지. 그리고 그냥 네, 네. 아~ 그랬군요.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B가 민망해할까 봐 재미있지도 않은데 웃으면서 그랬어.
‘○○씨, 미안한데 오전에 밀린 업무 처리하고 나중에 차 한잔 마시면서 얘기 나눠도 될까? 정말 미안해.’
‘알겠어요. 그럼 조금 있다가 차 한잔하러 넘어와요.’ 하고 웃으면서 나갔어.
이런 일 이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는 못할 것 같아.
아무튼, 내가 잘못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으면서 친하게 지내고 본인 B에게는 내가 무심하고 쌀쌀맞게 대했다고 그러는데 난 그러지 않았거든. 나는 누구에게는 친절하고, 또 누구에게는 쌀쌀맞게 대하고 그러지 않아. 어느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바쁘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이해하고, 밥이든 간식이든 같이 먹자고 하고 그러는데 서운하게 한 적이 없거든? B가 나를 만만하게 본 건가? 아니면 그동안 친절하게 행동했던 내가 잘못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