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매일매일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
어쩌다 가끔 한 번씩 나의 일상에 버퍼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뭘 해야 될지 모르고, 모든 것이 귀찮은, 번아웃 상태가 되어버린다.
TV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프로그램도 보기 싫고
책 읽는 것도
끼니때마다 밥 먹는 것도
눈이 무거워 졸린데 자는 것도
친구와 약속을 했지만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너무나 싫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전날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몇 시간째 고개를 떨군 채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는 얼굴로 ‘기운 내, 잘 될 거야.’
이렇게 용기를 주는 말을 잘도 하면서
왜 나는 나 자신에게 토닥이며 그런 용기를 주지 않는 것인지 냉정하기 짝이 없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인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돌아오는 봄이 오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버텨야 한다면 버텨야 하겠지?
아니, 그래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멀리 있는, 단지 나 혼자 하고 있는 사랑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너를 생각할 수 있게 존재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