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형이상학적 공리'를 탐구하는 학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모든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에는 경험적인 추론과 형이상학이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이 다른 학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다른 학문들은 공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세우지만, 철학은 그런 전제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은, 세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철학에는 보편적 공리가 없고, 철학자마다 나름의 공리를 세우고 추론을 전개해 어떤 체계를 완성하려고 합니다. 물론 철학자의 사상은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無)에서 출발할 수는 없습니다. 철학자가 세운 체계가 얼마나 보편성을 갖는지는 철학자의 역량에 달린 일입니다. 철학자와 예술가의 공통점은, 그들의 활동이 그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전기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철학자가 처한 환경을 면밀하게 연구해서 그 인물이 어떤 지적/정치적/문화적 환경에서 활동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공리가 없다는 점은 철학의 한계인 동시에, 철학이 다른 학문들에 비해 갖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또한 모든 학문들의 전제를 탐구하는 학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학문이라도 철학적 사유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사유하는 순간에는 이미 철학을 실천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철학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