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사-고대 그리스 철학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서양 철학은 일반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은 대체로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주로 자연을 탐구했던 시기로, 그리스 신화적인 우주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연과학적 우주론이 등장합니다. 탈레스는 우주의 기원을 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최초로 자연과학적 우주론을 세웠기 때문에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립니다(물론 지금 우리가 볼 때는 과학적이지 않지만,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에 비해 덜 추상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적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자연철학적 관심에서 벗어나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등이 주된 탐구 대상이 되었던 시기입니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세 번째 시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던 시기로, 철학의 체계가 세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시기는 윤리학을 주로 탐구했던 시기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주의, 신플라톤주의가 활동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철학이 발전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해서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되, 철학자들 간의 연관성이나 중요한 개념을 따로 서술하기 위해서 혹은 제 마음에 따라서 조금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첫 번째 시기, 서양 철학의 시발점인 자연철학 시기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시기를 전부 다루려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서론까지만 읽으셔도 대부분의 내용은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의 특성상 글이 무미건조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대지성사에서 출판한 <틸리 서양철학사>를 대부분 참고했습니다. 혹시나 질문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다음 글에서는 두 번째 시기를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세 번째 시기로 넘어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우주론을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기: 자연철학의 시대
서론
자연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인식은 신화적, 이분법적이다. 물체의 물리적 속성을 건조한 것과 습한 것,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등으로 구분하고, 물질들은 그런 속성들 중 하나를 지니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리고 물은 차갑고 습한 것, 불은 뜨겁고 건조한 것, 공기는 차갑고 건조한 것 등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아, 물체들도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신들도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들의 기원이나 현상의 원인들을 신화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부터는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신화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탈레스(B.C 624~546)는 세계의 기원을 신화가 아니라 자연 물질에서 찾은 그리스 최초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로 불린다.
초기 자연철학의 주제는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물질 혹은 원리에 대한 탐구였다. 다양한 우주론들이 등장했고, 형이상학보다는 자연과학에 가까웠다. 이 시기의 다양한 자연과학적 우주론들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에 의해 흐름이 끊겼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자연과학적 우주론이 발전하면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부활했다.
자연철학의 시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밀레토스 학파와 피타고라스 학파들이 활동하던 시기로,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물질 혹은 원리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었다. 두 번째 시기는 헤라클레이토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의 시기로, 존재의 변화와 생성의 문제를 탐구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가 변화하지 않고, 변화는 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존재는 항구적이고 통일적인 실체로서 사유를 통해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사물들은 변화하고, 유일하게 변화하지 않는 것은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보편적 이성(Logos)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론자들은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존재의 절대적인 변화는 없고 상대적인 변화는 있다고 주장하고, 소멸하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거나 파괴되지 않는 원자를 모든 현상의 근원으로 가정했다.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원자에 정신(Nous)가 내재해 있다고 보았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을 원자의 내재적 속성으로 파악해 최초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세웠다.
데모크리토스를 끝으로 한동안은 새로운 철학 체계가 등장하지 않았다. 초기 자연철학자들의 여러 가지 개념들 중 보편적 이성(Logos)와 정신(Nous), ‘질료와 형상’ 등의 개념은 플라톤 이후에도 계속 발전한다. 이 시기에 제기된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는 사물과 현상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인식론적 문제이고,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발전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근대 자연과학으로 이어진다.
1.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물질 혹은 원리
1-1.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는 기원전 624년,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기원전 554년과 548년 사이에 죽었다. 탈레스는 대부분의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자연을 살아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자연을 구성하는 원초적 물질을 물이라고 생각했다. 물은 생명에 필수적이고, 물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변하고, 땅과 바다, 대기를 순환하기 때문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견해를 비판한다. 물은 규정적인 물질인데, 만물의 기원이 되는 물질은 무규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만물의 기원이 되는 실체를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불렀다. 아페이론은 무규정적이고, 영원하고, 무한하다. 아페이론이라는 무규정적인 질료의 영원한 운동의 결과로 모든 규정적인 물질들이 산출되며, 그런 물질들은 다시 아페이론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세계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공기는 건조하고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따뜻하고 건조한 요소인 불과 차갑고 습한 요소인 물을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기의 농도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농후해지면 바람, 구름, 물, 흙, 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은 추상적, 질적 요소인데 반해 공기는 구체적, 양적 요소로 보다 과학적이다.
1-2.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는 세계 내의 사물들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사물 간의 질서와 법칙은 수로 표현 가능하고, 수가 없다면 사물 간의 질서나 법칙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물의 기초에 수가 있고, 수는 모든 사물의 근원이라고 추론했다. 땅은 입방체이고, 불은 4면체, 대기는 8면체, 물은 20면체이다. 공간의 형식은 물체를 규정하고, 공간의 형식은 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수는 궁극적 원인이다.
2. 실재의 항구성과 변화, 생성
2-1.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의 변화와 생성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는 항구적인 실체는 없다고 보았다. 모든 사물들은 변화한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불로 보았는데, 불은 그 어떤 물질들보다 빠르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세계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 이성적 원리(Logos)이다. 모든 사물은 로고스에 의해 변화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
2-2.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존재가 자신이 아닌 어떤 것으로 변할 수 없고,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나올 수 없으며, 존재가 비존재로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재는 쪼개질 수 없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존재는 항구적이고, 감각적인 변화는 가상에 불과하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적 현상 너머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런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감각에 대립시킨다. 존재는 이성적이고, 영원하고 변화하지 않는 통일체이다.
2-3. 질적 원자론
2-3-1.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흙, 공기, 불, 물의 네 가지 요소가 모든 물체들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각각은 자신들의 특수한 본질을 갖고 있다. 네 가지 요소들은 소멸, 생성, 변화하지 않고 서로 간의 결합과 해체에 의해 물체들이 생겨난다. 결합과 해체를 설명하기 위해 엠페도클레스는 사랑(Philia)와 미움(Neikos)의 두 가지 힘을 가정한다. 그는 모든 사물들이 사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2-3-2.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는 무한히 작고 무한히 많은 소립자를 가정했다. 소립자들 각각은 서로 다르며 분해할 수 없고 변화하지 않는다. 소립자들의 혼합과 분리에 의해 여러 가지 물체들이 생겨나고 분해된다. 소립자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운동이 존재해야 하는데, 아낙사고라스는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소립자들에 내재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정신(Nous)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2-4. 양적 원자론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는 모양이나 크기 등의 양적 측면에서 서로 다른, 유한한 수의 원자가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원자는 운동을 내재적인 속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기계적인 법칙에 종속된다. 원자는 질적으로 동일하고 유한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진공(眞空)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원자들이 운동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