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추론과 예술적 판단력

by 송한결

사람의 인식 능력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감각, 지성, 이성이다. 지성은 감각된 것들을 정리하고 통일한 다음 판단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성은 지성의 판단을 근거로 언어를 사용해 추론하는 능력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이성은 개념을 이용해 추론하는 능력을. 지성은 감각 자료를 이용해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성은 이미 주어진 개념을 활용하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반면, 지성은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보다 특수하고 개인적이다.



수학이나 과학적 방법론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이성이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근대까지의 서양 철학은 전적으로 이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였다.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알 수 있고, 신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아시아의 철학에서도 이(理)와 기(氣)를 나누었다.



그러나 수학이나 과학의 언어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언어가 충분히 명료하지도, 확실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이나 과학의 언어는 단순명료하고 객관적인 반면에 기존의 언어는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수학이나 과학의 언어는 철저히 개념에 기반해 발전하는 반면, 기존의 언어는 개념과 감각, 이미지 등이 모두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철학적 방법론은 더 이상 객관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고 철학은 언어학, 논리학, 심리학 등으로 분리되었다.


지성이 판단하는 능력이라면, 이성은 추론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대체로 지성을 이용하는 것 같다. 물론 개념을 사용해 논증하고 추론하기도 하고, 어떤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이성적이거나 순수하게 감각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지성이 관여한다. 추론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추론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적절한 언어를 입력해 주면 인공지능도 사람과 똑같은 논리를 이용해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을 통해 사고하는 능력, 즉 감각 자료를 종합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실제로는 논리적 추론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없다. 지성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개나 고양이, 침팬지 같은 동물에게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의 지성은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사람이 창작한 복잡한 예술이나 운동, 놀이가 그 증거이다. 그렇기 떄문에, 사람의 고유한 능력은 이성에 있지 않고 높은 수준의 지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예술이 이성적인 목표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그런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써 예술은 새롭고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예술가의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감각을 잘 배열해서 통일해야 하므로 예술은 지성적이다.



많은 철학자들, 과학자들은 순수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하기를 바랐고, 오직 신만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 그 자체로는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가장 고유한 능력은 높은 수준의 예술적 판단력이다. 예술적 판단력 중에서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아름다움, 조화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예술을 창작하는 것에서도 아름다움이나 조화를 인식할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통해서도 아름다움이나 조화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수학이나 철학이 발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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