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지
<초나라와 한나라>
진나라가 멸망한 이후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두고 대결하였다. 항우는 죽기 직전, 천운이 다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노래를 남겼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서는 영리한 꾀를 내어 전세를 바꾸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모든 사람이 제각기 계략으로 천하를 차지하려 하니 전쟁은 천운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유방은 기원전 202년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한나라 초기에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데 주력했다. 흉노와 화친을 맺어 전쟁이 없게 하였다. 한고조 유방은 항우를 제압하는데 큰 보탬이 된 한신을 초왕에 책봉했다. 그러나 얼마 후 한신, 팽월, 경포 등을 숙청하였다. 한신은 끌려가는 수레에 앉아 ‘날쌘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한탄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 무제 때를 전한의 황금시대라고도 하는데, 흉노를 토벌하려 시도하였다. 한 문제는 검소한 생활의 모범을 보이고 국가 재정을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을 보살폈다. 먼 옛날 요와 순을 본받으려 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이후 사람들은 문제와 경제가 다스렸던 시대를 ‘문경의 치’ 라고 하며 칭송하였다.
<전한 시대> 경제 이후 무제가 즉위했다. 무제는 위만조선을 공격하여 낙랑/임둔/현도/전번의 4군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무제는 흉노 토벌에 나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장건이 서역을 13년 동안 떠돌다 와서 지리에 밝은 것이 큰 보탬이 되었다.
장건은 월지에 보낸 한의 사자였으나, 흉노에 사로잡혀 10년 동안 억류 되었다. 왕실의 혼란을 틈타 탈출하였으나, 다시 오손에서 쫓겨 서남쪽으로 도망쳐 사마르칸트 부근에 정착했다. 대하를 속국으로 삼은 다음 드디어 월지를 만났으나 월지는 군사동맹을 거부하였다. 곤륜산 남쪽 기슭을 따라 귀국길에 올라 13년 만에 장안으로 복귀하였다.
기원전 87년, 무제는 오작궁에서 죽었다. 무제를 이은 소제/선제의 36년 통치는 전한의 전성기였다. 선제의 뒤를 이은 원제는 이상주의자로써 유교 이념에 입각한 정치를 펴려 하였다.
이 즈음에는 왕씨 외척의 권력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왕망은 대사마->안찬공->재형->가황제를 거쳐 차례대로 지위를 높여가다가 마침내 유씨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다. 왕망은 형식에 집착하여, 주나라의 형식을 따라 복고적인 정치를 행하였다. 그러나 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써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되지 못하였다. ‘신’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나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서기 25년 6월, 후한의 첫 황제 광무제가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