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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리뷰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한 병사의 비극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by 송한결

이 영화는 전쟁 영화이다. 그러나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다. 삼국지에 나오는 전쟁처럼 흥미진진한 전개와 용맹한 장군은 더더욱 있을리가 없다. 몇백만 명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과 수류탄, 그리고 몇몇 정치가들의 타협이기 때문이다. '반 세기 동안 전쟁이 없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장교는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이념에 얽매여 병사들의 희생,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외면한다.


1914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된다. 총을 쏜 사람은 세르비아의 청년이었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동맹국들이 연달아 참전하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독일은 서쪽으로 프랑스,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부 전선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 전선이 교착된 지점이다.


파울은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기에 파울이 어리석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쟁에 나가기 직전 ‘몇 주 안에 파리에 도착할 것이다’ 라는 거짓말을 듣고 기대감에 차 있던 파울은 서부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전선에서는 숭고함, 명예심 따위는 있을 틈이 없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된다. 전선에 도착하는 순간 그런 마음이 사라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참혹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빼앗기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죽음을 맞은 파울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잠에 든 것처럼도 보이는 파울의 죽은 얼굴에서는 여전히 슬픔이 서려있다. 운명에 맞서는 마지막 저항인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현대적인’ 전쟁이 치러졌던 서부 전선에서,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의미에 수렴하는 죽음을 겪었다. 집무실에 앉아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증오하는 장교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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