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지
(주로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서) 중국은 2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들은 유교 중심의 정치 체제, 거대한 제국의 존재 등이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선 중앙아시아 민족들과의 계속되는 전쟁이 있었고 몽골은 한 때 원나라를 세워 동아시아까지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때 몽골로부터 많은 문화가 유입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점은,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하나의 거대한 통일 국가가 있었다기보다는 여러 개의 나라들이 서로 세력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등의 통일 국가도 여러 개의 약소국까지 포함하고 있었고, 또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로 관리하고 있었다. 통일되었다가 분열되기를 반복하는 것이 중국의 역사의 양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유럽 대륙의 스케일을 키운 것이 중국 대륙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도 결국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뭐가 그렇게 다르겠는가?
<송나라의 건국>
송나라가 세워진 직후, 왕안석은 신법(新法)을 제정해 경제를 안정시켰다. 신종은 이 정책을 지지했으나 신종이 죽고 신법은 대부분 폐지되고 구법이 되살아났다. 사마광은 구법을 옹호한 대표적 학자이다. 뛰어난 학자인 사마광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신법이 단순히 기득권층에 의해서만 폐지되었다기보다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는 측면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보수 세력이 훨씬 강력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금나라의 건국>
금나라의 태조는 아골타이다. 아골타는 여진족 완안부의 수장이었다. 여진족은 말갈족의 후손이다. 그들은 요/송과의 교역을 활발히 하면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길렀다. 1114년 9월 여진이 요나라(거란의 새 이름)를 공격했다. 여진은 요나라를 쉽게 격파하고 1115년 1월 아골타는 금나라를 건국했다.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송나라와 연합한다. 금나라는 중경을, 송나라는 연경을 함락시켰다(금나라의 힘을 빌려).
요나라가 멸망하자 금나라는 송나라를 공격한다. 송의 휘종은 도망치고 흠종은 어떻게 해서든지 금과 강화를 맺을 생각밖에 없는 나약한 왕이었다. 강화가 진행되던 중에 종사도가 원군 20여만 명을 데리고 왔음에도 종사도를 해임시키고 불공평한 조건의 강화를 그대로 진행하려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어쨌든 금나라는 철수했으나, 수 개월 후 종사도의 원군이 흩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침공해 쉽사리 송나라를 정복했다. 흠종의 동생 조구는 도망쳐 남송을 세웠다.
<남송과 금나라>
금나라는 남송의 고종과 강화를 맺었으나 금나라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곧 폐기되었고 금나라가 개봉과 장안을 점령했다. 이 때도 황제는 강화를 맺을 생각밖에 없고 전쟁 전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주전파인 악비가 항전하면서 잘 싸우고 있었으나 철수 명령을 내리고 불공평한 강화를 맺었다.
<원나라의 탄생>
몽골의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공격했다. 남송은 몽골과 연합해 금나라를 멸망시켰으나 그직후 몽골은 당연히 남송을 공격한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양양을 포위하고 1273년 함락되어 남송도 송나라와 비슷한 방식으로 멸망하게 된다. 그나마 육수부라는 장군이 마지막까지 몽골(원나라)와 싸우다가 황제와 같이 자결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 책 하나만을 읽고 쓴 것이라서 편향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