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일지

<이야기 중국사 3>, 김희영

독서 일지

by 송한결

<명나라의 탄생>

명나라의 태조는 주원장(朱元璋)이고 정식 명칭은 홍무제(洪武帝)이다. 원나라의 수도 대도(북경)을 점령하고 황제에 올랐다. 개국 공신이었던 호유용, 양무공 남옥, 육중형 등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친족까지 포함해서 숙청했는데, 황제가 될 자신의 손자 주윤문이 그들에게 휘둘릴까봐 미리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사에 그런 선례가 많은 만큼 경계했어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유능한 관리까지 숙청함으로써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양무공 남옥과 그 관련자 2만여 명을 숙청했을 정도라고 한다.

원나라의 최고 기구는 중서성이고, 좌승상/우승상이 최고 관리로써 모든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홍무제는 승상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해 행정 6부, 군사 5도독부로 기능과 권한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이는 승상이었던 호유용이 반란을 모의했다는 것으로부터도 자극을 받은 조치였다.

홍무제가 죽고 난 후, 홍무제의 넷째 아들 주체(朱棣)와 황태손 주윤문(允炆) 사이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어진 다툼을 ‘정난의 변’ 이라 한다. 주윤문이 즉위해 2대 황제 건문제(建文帝)가 되지만, 주체가 ‘정난군’을 일으켜 남경으로 가서 건문제를 몰아내고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가 되었다.

영락제는 2차례에 걸쳐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대항해를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항해로를 만들어 교역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크게 보면 국위 선양, 교역 촉진, 그리고 건문제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또 2,000여 명의 학자들을 동원해 3년에 걸쳐 백과사전 <영락대전>을 완성했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원나라 말기부터 중국 연안에 왜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족들 사이의 밀무역 또한 성행했는데, 쌍서 지역이 대표적이었다. 군사 책임자 주환은 밀무역을 철저히 단속하기 시작해 쌍서항과 월항을 소탕하고, 이광두와 허동 등 호족을 체포하였다. 절강지구 사령관 척계광은 왜구를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북쪽에서는 에센->다얀칸->알단칸으로 지도자가 바뀌는 내내 몽골의 남침이 되풀이되었다.

임진왜란을 틈타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세력을 확대했다. 누르하치는 1589년 건주 여진을 통일하고 만주로 개칭했다. 1616년에는 해서 여진을 정복하고 여진을 통일하였다. 후금을 건국하고 ‘8기 제도’를 기반으로 행정과 군사 조직을 정비했다. 후금은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나라와 명나라가 벌인 ‘살이호의 대전’에서 명나라가 크게 패했다. 신해관과 영원성은 명나라 최후의 보루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로써 원숭환이 장군으로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삼계가 신해관을 방어하는 장군이 되어 청나라를 방어하고 있을 때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이자성이 수도를 포위하고 오삼계의 아내 진원원을 인질로 잡았다. 오삼계는 진원원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청나라에 투항해 같은 편이 되었다. 이자성은 수도를 점령했지만 예친왕이 쳐들어와 하남으로 쫓겨가 구궁산에서 죽었다. 이자성이 도망친 덕분에, 진원원은 수도에서 오삼계와 재회할 수 있었다.

청의 태종 홍타시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광해군은 중립 외교를 펼쳐 청나라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만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사실상 명분만을 고집한 결과가 되었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한 실패한 외교였기 때문이다.

송산성의 전투로 결국 산해관이 함락되어 1644년 명나라는 멸망한다. 명나라의 수도는 북경, 그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는 남경이었다. 복왕 주유승은 남경으로 도망쳐 남명 정권을 세운다. 또 정성공은 대만으로 진출해 네덜란드를 몰아냈다. 그리고 군사력을 길러 청나라에 대항하려 하지만, 청나라가 대만을 점령한다.

삼번의 반란도 일어났으나(번은 행정 구역의 명칭이다), 두 번왕이 이탈하고 오삼계는 고립되었다. 그리고 삼번의 명분에 백성들이 동조하지 않아 청나라에게 유리했다.

고대 의학의 집대성인 <본초강목>, 농공업전서 <천공개물> 등이 편찬되어 실용과학이 발전하였다.

청나라 때는 러시아와 몽골과의 싸움도 빈번했다. 러시아가 알바진까지 진출하면서 청나라와 대립하다가 네르친스크에서 강화 교섭을 맺었다. 몽골은 내몽골, 가르카 몽골(북), 에르트 몽골(서)로 나뉘어 있었는데 가르카의 세력이 확대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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