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일지

<1962>, 마이클 돕스

독서 일지

by 송한결

최근 한국과 쿠바가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다. 쿠바는 1960년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미국, 한국 등과 수교를 단절하였고,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공산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또, 지금까지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쿠바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이 불리하다는 의미이다.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또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및 IMF,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로부터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다가 코로나 19로 인해 관광 산업이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소련과 미국이 한창 군비 경쟁을 할 때, 쿠바는 미국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그래서 미국이 쿠바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소련의 입장에서도 쿠바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사실상 핵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 책은 미국과 소련 간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1962년의 13일 동안을 분 단위로 추적하면서 마치 영화나 다큐멘터리처럼 재구성한다. 꼼꼼하게 따라가다보면 마치 실제 그 시간 속에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1962.10.16 화요일 오전 11:50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몰래 배치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쿠바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정권이 있었다. 미국은 가장 가까이 있는 섬나라인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이 있다는 것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CIA는 “몽구스 작전” 이라고 불리는 쿠바 정권 전복 작전을 계획하고 그 중 몇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중요했지만, 당시 케네디의 쿠바 정책과 관련된 심리적/정치적 문제이기도 했다.

미국은 세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무시하기, 쿠바 해상을 봉쇄하기, 쿠바를 공격하기. 만약 쿠바를 공격한다면 미국과 소련 간의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일단 해상 봉쇄를 택했다.

1962.10.20. 토요일 오후 2:30

공습 vs 봉쇄를 둘러싼 회의가 있었다. 공습은 즉각적인 위협은 감소시킬지 모르지만, 소련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 봉쇄는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쿠바 미사일 기지를 기정사실화하는 여유 시간을 줄 수도 있다.

1962.10.22 월요일 오후 3:00

소련은 미국의 봉쇄 작전에 대응해 세 가지를 구상했다. 쿠바와의 방어 협정을 공포해서 핵우산을 확대하는 것, 핵무기 통제권을 쿠바에 넘기는 것, 미국이 터키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소련에 이익이 되는 세 번째 조건으로 끝나게 되었지만, 소련의 원래 계획은 첫 번째였다. 왜 소련이 미국에 알리지 않고 몰래 미사일을 배치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미국은 핵전쟁 두 단계 전인 데프콘 3 경보를 띄우고, 해상 봉쇄를 위해 핵무장한 F-106기를 이륙시켰다.

1962.10.23 화요일 오후 9:35

카스트로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했고(시간이 흐름에 따라 확신은 점점 줄어들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든 결전을 치르겠다고 다짐했다.

1962.10.24 수요일 오전 8:00

흐루쇼프는 쿠바의 핵무장 탄도미사일이 ‘방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키롭스크호를 비롯해 미사일 적재 선박이 뱃머리를 돌림으로써 약간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 10:00

미국이 핵전쟁 바로 전 단계인 데프콘 2를 발령했다.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비상동원령을 내려 군사를 플로리다 주로 집결시켰다.

오전 11:04

미국 동부 해안에서 B-130을 비롯한 소련 배 4척이 발견되었다.

오후 1:00

미국은 상륙 작전을 통해 쿠바를 전면 침공할 계획을 세웠고, 소련은 쿠바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

1962.10.25 목요일 오전 3:00

이때쯤에는 위협을 넘어서 핵전쟁이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에, 케네디와 흐루쇼프 모두 전쟁을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미군이 증원되었고, 제146차량화소총병연대는 사과라그란데의 미사일 기지를 방어했다. 제럴드 커피 중위는 정찰 도중 새로운 소련 미사일을 발견했다.


1962.10.26 금요일 오전 1:03

위스콘신 주의 본크필드의 관제사는 사보타주 방어 계획을 실행하려 했다. 즉 핵무장한 F-101, F-106 등의 전투기를 최대한 많이 출격시킨다는 것인데, 출격 직전 계획이 취소되었다.

오전 7:50

미국은 봉쇄 결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련과 별 관련 없는 마주클라호를 수색했다. 미군의 저공 정찰기가 사진을 찍어 본 결과 소련군이 미사일 기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오

마주클라호 소식을 언론에 공개했다. 카스트로는 여전히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다. 몽구스 작전 중 CIA는 하비가 지휘했다. 존 로셀리는 라스베이거스 마피아의 대리인이자 CIA가 고용한 ‘피델 카스트로 암살 작전’의 주요 인물이었다. 쿠바 침투 작전은 보류되었다.

오후 6:00

흐루쇼프는 만약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오후 10:50

쿠바 주둔 소련군 사령관 이사 플리예프가, 전투태세를 정리한 보고서를 소련 국방부 장관에게 보냈다.

1962.10.27 토요일 오전 0:38

‘쿠바 상공을 비행하는 미군기를 추적할 것‘ 으로 쿠바군의 교전 규칙이 바뀌었다.

오전 5:00

소련은 터키와 파키스탄의 미군 기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겠다는 협상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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