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지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알려진 사건 기간에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누가 역사를 통제하는가였다.”
1962.10.27 토요일 오전 6:00
미국은 여론에 보여줄 목적으로 소련의 그로즈니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은 대부분 강경한 대외 정책을 요구하였다.
오전 7:00
영국의 해롤드 맥밀런 총리는 미국을 어떤 방식으로 도울 것인지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의회에서 미국을 돕는 것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해상 봉쇄를 선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이 베를린에 보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은 냉전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흐루쇼프도 충돌 확대를 꺼려했다.
오전 9:20
케네디는 “풋볼”이라 불리는 핵공격 암호 가방과, 집무실 전화기의 적색 버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오전 10:22
미군 U-2기의 야간 정찰 임무 중 쿠바 영공을 침범했다.
만약 소련이 터키의 주피터 미사일을 공격한다면 핵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다.
오전 11:17
쿠바는 오후 3-4시쯤 미국의 공격을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 관찰자의 눈에는 너무나 고요하게 보였다.
U-2기가 쿠바에 의해 격추되었다.
오전 11:30
핵무장 가능한 IL-28기가 준비되었고, F-100 슈퍼세이버 전투폭격기에 수소폭탄을 배치하는 것이 승인되었다.
CALAMITY 실험이 있었다.
오전 11:59
척 몰츠비가 알래스카 공기 채집 임무를 하던 중 실수로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소련 미그기가 출동하고, F-102기 편대가 비상 출격해서 몰츠비를 데리고 왔다. 몇 개월 전 임무를 계획할 때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 혁명을 확대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오후 4:00
쿠바를 정찰하던 RF-8 2대가 대공포의 포격을 받았다. 임무를 취소하고 기지로 귀환했다.
오후 5:59
미 해군이 B-36, B-130, B-59 등 소련 잠수함을 추적했다.
오후 7:30
린든 존슨 미 부통령은 소련 SAM 기지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을 주장했다.
딘 러스크 국무부 장관은 소련 대사에게 주피터 미사일 철수를 통보하자고 주장했다.
오후 8:25
백악관 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미국이 아니라 UN 사무총장이 쿠바-터키 철수안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오후 9:00
미군이 쿠바 침투 명령을 대기 중이었다.
1962.10.28 일요일 오전 9:00
흐루쇼프의 편지가 생방송되었다. 미국이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소련은 케네디의 TV 담화 예정보다 빠르게 방송하려고 긴급하게 준비했으나, 재방송을 본방송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