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지
“북일 교섭 30년”이란 제목을 보고 조금 놀랐다. 북-일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의외로 생소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와다 하루키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분이기도 해서 믿음이 갔다.
왜 종종 우리는 한-일, 남-북은 고려하면서도 남-북-일을 잘 연결짓지 않는가? 적어도 식민지 시기와 한국 전쟁까지의 역사에서 일본의 잘못은 한-일 만큼이나 북-일 간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일본 간의 외교적 관계도 복잡하고 모순된 길을 밟아왔다.
[독서 메모]
1990년 6월 한-소 국교가 수립되었다. 북한은 1)핵무기 자체 개발, 2)북일 교섭으로 대응하려고 하였다. 1차 북일 회담은 1991년 1월 30일 평양에서 시행되었다. 북일 5차에 걸친 회담의 전반적 논점은 1)병합조약의 합법성, 2)위안부 문제, 3)대한항공 폭파 사건 이었다. 그 외에도 남북한 UN 동시 가입,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 원자로 사찰 등이 있었다.
2차 회담은 1991년 3월 11-13일 도쿄에서 있었다. 3차 회담은 1991년 5월 20-22일 베이징에서 있었다(왜 북일 교섭이 베이징에서 치러졌을까..?).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북일 교섭 찬성 VS 반대 의견이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1991년 9월 17일 남한과 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했다. 4차 회담은 8월 30일 평양, 5차 회담은 11월 18-20일 베이징이었다. 미국이 어느 정도 개입해서 1992년 1월 30일,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핵 사찰 협정을 조인했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된 직후였다.
미국은 북한의 목표 두 가지 중 북일 교섭에는 우호적이었지만, 핵무기 자체 개발은 막으려 했다. 또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책임 소재를 놓고 북한과 일본 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아 1992년 말 북일 교섭은 중단되었다. 북일 교섭은 이 책이 출판될 무렵인 2022년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남한 즉 한국은 1965년에 국교를 맺었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기본조약의 대가로 3억 달러의 무상 원조, 2억 달러의 차관을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이 책은 그 때부터의 30년 간의 일본 정부 혹은 시민단체의 노력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씌어졌다고 한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에서 아시아 전반에 대한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죄했다. 그럼으로써 북한-일본 간의 관계는 진전되는 듯 보였으나 북미 관계는 악화되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에 특별 사찰을 요구했지만(당시 북한이 플루토늄을 생산한다는 의혹이 있었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