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 Feb 14. 2022

성교육 과외시대

갈팡질팡 하던 나날들



"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앞으로 그룹 성교육(성교육과외)을 하지 않으려구요 "


한달 전

종종 그룹 성교육 연계를 해주시던 지인께 '나는 성교육 과외는 하지 않겠노라' 말하고 말았다.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 벌이와 공교육 현장의 성교육이 아닐까.

성은 수 없이 다양한 얼굴을 한 채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공교육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여전하다.

'안돼요, 싫어요' 에서 '다른 사람의 경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정도로 바뀌었을 뿐 조기성애화를 두려워 하는 까닭에 팥없는 빵처럼 '성' 없는 성교육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몇 해 전부터  

학교에서 해주지 않는 혹은 못하는 '현실적인 성교육'을 쌩돈을 들여서라도 하겠다는 양육자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공교육 밖에서 성교육을 제공하는 강사/단체도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심심찮게 그룹성교육(성교육과외) 제안을 받았고, 때로는 응하고 때로는 거절하며 지지부진한 나날을 보냈다.


사실 나는 성교육 과외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학교 급식이 부실하면 집에서라도, 식당에서라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될 게 아닌가.


그런데 머리로는 성교육 과외가 필요하다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선뜻, 유쾌한 기분으로 들어오는 제안에 "yes" 하지는 못했다. 성교육 과외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성교육 과외에는 돈이 든다.

내 몸과 마음에 대해 탐색하고 나의 경계를 확인하고 나의 건강을 돌보며 타인에게 나의 결정을 전하고, 타인의 결정을 수용하며 때로는 거절을 견디며 또 때로는 기쁨과 쾌락을 준비하는 그 과정에 '돈이 들게' 된 것이다.

성교육 마저도 격차가 생기고 사각지대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까지 그 틈을 벌리는데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 현장에서 현실적인 성교육을 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성교육의 격차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답은 간단했다.

무료로 현실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이다.


무료 성교육을 하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지인들에게 소문도 냈다.


그러나 나는 단 한건의 무료 성교육도 해내지 못했다.


아무도, 정말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몇몇분들이 호기심을 보였지만 그것이 교육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내가 먼저 '무료'로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돈 내고'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황스러웠다.


몇몇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적은 돈이라도 내겠다, 아니다 무료로 강의 하겠다며 담당자와 실랑이 벌였던 일, 무료로 아이 학습지 체험본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던 일, 만원이라도 꼭 내담자에게 상담비를 받는다는 지인의 이야기


무료라는 말은 상대방에게 부채감을 준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최근 이러한 고민을 갖는 내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심플하게 가보기로 했다.

돈을 안 받는게 부담스럽다니,

그럼 그냥 돈을 받기로 했다.

애매하게 가성비 강사가 되지 말고

남들 받는 만큼 받기로 했다.


한달 전 발언이 무색하게 나는 새로운 결심을 세웠다.

'교육을 하는 것' 그 자체를 우선으로 두고

공교육 현장에서도

사교육 현장에서도

성교육을 빡시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올해 나의 목표이다.




작가의 이전글 핑크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 성평등 교육 어떻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