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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an 07. 2021

레깅스 불법 촬영,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몇 달 전,  직원의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손님이 해당 직원의 사진을 동의 없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일로 인터넷이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빵집에 들어선 해당 손님이 이 빵, 저 빵을 쿡 쿡 찔러보고 만져보며 가게 안을 종횡무진 하자 직원이 ‘지금 코로나로 조심해야 하니 사지 않을 빵은 만지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이에 불쾌감을 느낀 손님이 휴대폰을 집어 들고 그러지 말라며 쟁반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까지 한 직원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까지 올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손님의 바람과는 달리 잘게 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 것은 빵집 직원이 아닌 손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손님의 행태에 분통을 터트리며 처벌을 요구했고, 잘못도 없이 원치 않은 사진이 찍힌 점원에 대한 걱정과 위로를 보냈다.     



 한편 2018년, 레깅스를 입고 버스에 오른 한 승객을 다른 승객이 ‘동의 없이’ 사진 찍은 일이 있었다. 1심에서는 유죄가 나왔고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다. 그리고 최근 대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앞에 기술한 빵집 불법 촬영 사건에서 여지없이 불법 촬영을 한 행위자에 대해 분노하며 처벌을 요구한 것과는 달리 레깅스 불법 촬영 사건을 두고는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다니냐, 옷을 들추어 찍은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 찍은 건데 그게 수치스러우면 그런 옷을 그간 어떻게 입고 다녔냐, 그걸 촬영한 게 음란물 촬영이면 그걸 입고 다니는 건 공연음란죄 아니냐 등 피해자가 이런 피해를 유발한 셈이라는 의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 없이 사진을 찍는 건 범죄라는 의견 사이의 논쟁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원치 않는 사진을 찍었다는 것과 상대방의 옷을 들추거나 벗기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촬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의 문제가 된 행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피해자에게는 전적인 공감과 위로를 보내지만, 후자의 피해자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한 것일 뿐인데 그게 그렇게 수치스러우면 평소엔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바깥을 돌아다녔냐’는 비난과 의구심을 보낸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한 두 사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런 모순된 반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성폭력을 마주할 때, 폭력이 아닌 ‘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을 ‘성’ 문제로 인식하고 ‘폭력’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내는 식이다. 해당 행위가 폭력적인지 아닌지 힘의 차이를 이용한 압력이나 속임이나 다른 술수가 있었는지 상호 동의하였는지 보다도 옷차림이 어땠는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지, 평소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는지 따위를 파고드는 것이다.

폭력이라는 본질은 다루지 않고, 오로지 ‘성’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어떤 문제를 만들어낼까?     


한 청소년이 랜덤채팅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 몸 사진을 교환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함께 채팅을 하던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던 또래 청소년이 아닌 몸캠 피싱 범죄자였다.

서로 썸 타는 사이라 굳게 믿고 있었지만 몸 사진을 전송한 순간부터 이를 빌미로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이 이어졌다.


피해자는 이러한 피해사실을 즉각 알리고 피해에 대처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피해자는 약속된 날짜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했고 가해자는 잔인하게도 피해자의 휴대폰을 해킹하여 얻어낸 번호들로 피해자의 몸 사진을 유포해버렸다.

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은 같은 반 친구가 해당 피해자의 피해사진을 (몸캠 피싱 범죄자로부터) 전송받고 나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이 청소년은 이러한 피해사실을 왜 즉각 알리지 못했을까?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성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이 성적인 행위를 했으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내재화한 까닭이다.      


성폭력은 성(性)을 수단으로 하는 ‘폭력’ 문제다.     

이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고 자꾸 ‘성’ 문제로 흐름을 이어가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 조차 ‘피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보고하지 못해 보다 더 큰 피해에 노출된다. 게다가 어찌 용기 내어 피해를 신고하더라도 비난의 화살이 되려 피해자에게 쏟아지니 이는 가해자에게 마음껏 가해행위를 할 수 있도록 자유이용권을 발부한 꼴이 된다.     


어떠한 옷을 입었건, 어떠한 사이었건, 언제였 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소리 높여 서로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외출은 낮에만 하며, 절대 타인에게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는(문자 보낼 때 웃는 이모티콘 쓰지 않기 등) 삶이 아니라

언제라도 그 누구라도 매 번, 매 순간 상대방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하는 삶이다.     



왜 레깅스를 입고 바깥에 나왔는지 묻기 전에,

왜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했는지를 묻는 것.      


우리는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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