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엔 관심 없다며 제법 쿨한 척하던 아이가 20점이라는 점수를 받고서야 위기감을 느꼈는지 받아쓰기 연습을 해보자고 나선 것이다. 나는 아이고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대로 ‘감자, 자동차, 안녕하세요.’ 등을 내뱉기 시작했다.
“자 다 썼어? 그럼 6번~”
나는 아이가 잘 받아 쓸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남, 자!”
그런데 그 순간, 아이는 연필을 내려놓곤 양팔로 자신의 팔을 교차해 끌어안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으~ 소름 끼쳐”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에,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려했던 일이 기정사실이 되는 건가 싶은 불안감에
나는 확인을 해야만 했다.
“왜? 뭐가 소름 끼친다는 거야?”
“남자 말이야!”
“그러니까 남자가 왜?”
“학교에서 나 때린 애들, 전부 남자란 말이야!”
12월에 태어나기도 했고, 또 유난히 체구가 작아 학교생활에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혹시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지 내심 초조해하고 있던 터라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았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멍해졌다.
그 순간 그런 나를 향해 우리 엄마는 결정타를 날렸다.
“남자애들은 원래 짓궂어, 괜찮아”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에게 맞았다는 아이의 발언은 내 머리에 안타를 날렸고, 위로랍시고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는 엄마의 발언은 홈런을 치고야 말았다.
나는 큰 아이를 낳고 무려 백일 간 친정에서 몸조리를 했고 이후로도 아이의 아토피 문제로 8개월이 지날 때까지 거의 친정집에 눌러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도 대단했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신변처리를 해주고 안아주고 얼러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 ‘미안한데 딸인 너보다 외손녀인 이 아이가 더 귀하다’ 고까지 했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아이가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쥐어 터지고 왔다고 했을 때 취한 액션이 당장 학교로 쫓아가서 범인(?)을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남자는 원래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이라니.
그제야 나는 알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젠더고정관념은 피보다도 더 진하다는 것을.
사실은 잊고 지냈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해 아이와 우리 엄마, 그리고 담임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 역시 곧 잘 적응해주어서 이젠 해결이 된 지나간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내가 방금 전 어떤 한 권의 책을 읽기 전까진.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글밥이 있는 책에 흥미를 보였다. 그런데 기존에 집에 있던 책은 그런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해서 며칠을 알아보고 고민하다가 저학년 문고 시리즈를 질렀는데 드디어 오늘 배송이 온 것이다. 책장에 책을 꽂으며 아이는 너무너무 설레어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권씩 읽어주겠노라는 나의 말에 어떻게 한권만 고르냐며 투덜대면서도 아이는 고심 끝에 책 하나를 소중히 집어왔다.
첫 장을 펼쳤다. 키가 작은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우리 아이처럼 키가 작네?’ 나는 아이가 공감하며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증폭되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면 넘길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설마설마는 제발로 변했고 급기야는 화가 났다.
남자 주인공에게는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거치면서 남자 주인공은 좋아하는 아이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로 결심하는데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다름 아닌 다른 친구에게 선수를 뺏길까 봐서다. 그래서 고백도 떠들썩하게 운동장에서 많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해버린다. 이에 여자 주인공은 두 눈이 퉁퉁 부어버릴 정도로 울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렇게 소문이 나면 다른 여자 친구들 중에서 누가 너를 좋아해도 접근하기 어렵고, 네가 다른 여자 친구를 좋아해도 말을 건넬 수가 없단 말이다.”라고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존중하며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지금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지에 대해서 언급하기는커녕 고작 앞으로 다른 여자들의 접근이 어렵거나 다른 여자에로의 접근이 어려워질까 봐 이번 방법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하필이면 그런 외모를 가진 여자아이를 좋아하냐며 한 술 더 뜬다.
상황이 이러할지니 당연한 전개겠지만,
그 날 이후 남자 주인공은 단숨에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고 “그럴수록 어깨를 펴고 다니며 속으로 이제 어쩔 수 없이 (여자 주인공은) 내 친구가 되어야만 해”라고 중얼거린다.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이후엔 그 여자 친구와 가까워지며 동화가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고백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사냥에 가까운 주인공의 전후 태도에 두 눈이 퉁퉁 부어버릴 정도로 울어버렸다는 여자 주인공이 대체 어떤 계기로 남자 주인공과 가까워지게 되었는지의 서사 따위는 없다.
‘정말 이게 끝이야?’ 라며 기막혀하는 와중에 독자에게 글을 남긴 지은이의 말에 나는 말문마저 막혀버렸다.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또 하나가 있어요.
바로 짓궂게 구는 것이에요’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로맨스 관계에서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연애 각본이 있다.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벽치기 키스, 기습키스 등이 폭력이 아니라 로맨스로 그려지고 여성의 ‘싫다’가 내숭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다 보니 ‘라면을 먹고 가라’는 권유가 성적 유혹인지 단순한 호의인지 논쟁이 되고, 실제 호의였을지라도 성적으로 유혹했다는 오명을 벗기 쉽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성교육 현장에서도 ‘동의와 존중’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주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데 초등 저학년 문고에 이런 강력한 복병이 숨어있을 줄이야. 연애각본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부터 우리에게로 스며들어 온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다시 끄집어졌고,
나는 조금 막막해졌다.
다행히도 아이는 책을 골라놓고선 잠이 들어버렸다.
나에게 조금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내일, 이 책으로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할까...
고민되는 밤이다.
* 해당 동화는 20년 전 만들어진 동화이기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이렇게 그려질 수 있겠다 여겨집니다. 본 글은 단순히 해당 동화나 저자분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젠더 고정관념, 연애 각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