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의 흑인 문화를 사랑합니다. 특히 그들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정제된 생활 감정과 정서가 절절하게 담긴 블루스와 재즈 음악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물론 백인에 의해 낯선 땅에 강제로 이주되어 비인간적인 대우와 노동력의 수탈을 경험한 역사가 미국의 흑인뿐만 아니라 아프로- 아메리칸모두의 공통된 것이지만 미국 내에서는 지금도 인종 간의 갈등이 첨예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미국 흑인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애착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그들에 대한 나의 애착이 단순하게 감상적인 관심에 그치지 않도록 나름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그들과 동일한 체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 온전히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이란 남의 나라의 인종 갈등에 대하여 국외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인 흑인의 내적인 상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렇다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잘못된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외면할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소설에서 미국 흑인들의 내적 상처와 피해의식을 이해하고자 시도하고,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시를 통해 그들의 분노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흑인들의 정서가 잘 나타나는 블루스와 재즈 음악을 통해서는 그 음악적 가치와 함께 그들의 영혼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여성 재즈가수인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른 'Strange Fruit(이상한 과일)'만큼 흑인들의 아픔과 내적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노래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리지.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지.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흔한 일이었던, 백인들에 의한 린치를 당한 후 죽어 나무에 목 매달린 흑인 청년의 주검을 이상한 과일로 빗대어 묘사한 이 노래는 재즈 특유의 스윙감도 없는 매우 독특한,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로 감정을 억누르는 듯 담담하게 부르는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따라올 것이 없습니다. 이 노래는 빌리 홀리데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실제로 빌리 홀리데이의 일생도 흑인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상처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인 '블루스를 노래하는 소녀'(오래전에 가격이 환으로 표기된 책이 집에 있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에는 1920~30년대의 흑인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살에 임신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빌리 홀리데이는 백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다 10살 때 성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흑인이었기에 백인을 유혹했다는 이유로 감화원으로 보내집니다. 이후에도 흑인 여성에게는 흔한 반복된 성폭행을 경험하고 매춘으로 살아가는 거리의 여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인 1933년 대공황으로 어려워진 생활고에 생계를 찾던 중 클럽에서 우연히 부른 노래로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만 실연 등으로 마약을 끊을 수 없어 결국 1959년에 44세의 나이로 약물 중독에 의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자서전에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적용되는 인종차별의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재즈가 흑인의 음악이었지만 1930년대 빅밴드의 마스터는 대부분 백인이었고 연주를 위한 극장 출입문조차 흑인과 백인이 사용하는 것이 구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단원임에도 불구하고 투숙하는 호텔도 차등을 두었다는군요.
음반으로 듣는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코모도어 레코드와 콜롬비아 레코드에 남긴 1930년대의 전성기 녹음과 마약에 찌든 쉰 목소리의 1950년대의 버브 레코드에 남긴 녹음과 그 사이에 미국 데카 레코드에 남긴 녹음이 있습니다.
'Strange Fruit'의 최초의 녹음은 1939년 코모도어 레코드에 남긴 것으로 재즈 피아니스트 소니 화이트의 긴 피아노 전주가 매력적인 연주입니다. 이후 버브 레코드 시절에도 이 노래의 녹음을 남기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가장 좋았던 노래는 1930년대의 코모도어 음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약으로 음색이 퇴색한 1950년대의 버브 음반의 노래 또한 그녀의 고단했던 삶과 견주어 들을 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