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1980년의 첫날 아침에 어느 중앙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하며 무슨 선언문처럼 세상에 던져진 시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오지 않는 막차"와 같이 끝내 맞이하지 못한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우리의 억눌린 부끄러움을 자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종의 음모를 계획하듯 숨죽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꿈꾸던 새로운 세상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우리는 신문지에 워키토키를 숨긴 채 버젓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정보 형사와 교내 프락치의 눈길을 피해 학교와 멀리 떨어진 중국집에서 만나 기약없이 꿈꾸기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기쁨은 우리의 몫이 되지 못한 채 1986년에 후배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꿨었던 우리는 오랫동안 지나간 청춘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자책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흘러가버린, 억눌렸던 젊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언젠가 한 선배가 했던 "너무 패배주의에 젖어있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내 생각을 그 선배에게 바로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살았던 그 시대 자체가 패배한 시대였다는 말을 변명처럼 속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억눌린 사회적 분위기와 숨죽인 삶이 잘 표현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읽다 보니 가슴이 뜨거웠던, 그러나 그만큼 고뇌와 아픔도 많았던 우리 이십 대의 모습이 안타깝게 떠오릅니다. 더불어 '8시에 기차는 떠나가네'라는 노래가 이 시에 겹쳐져 떠오릅니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관현악곡, 발레곡, 오페라 등 클래식과 영화 음악, 대중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음악을 작곡했던 거장, 특히 그가 작곡한 대중음악은 독재 정권에 억압받던 그리스 민중의 애환을 노래한 것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노래들입니다. 실제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반정부 활동으로 정권에 의해 구금된 바 있어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은 음악가들의 구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 태생의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의노래로 처음 소개된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To treno feygei stis okto)' 또한 그런 노래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연인은 몸을 피해야 하지만 기차를 놓치고 체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났고
당신은 홀로 역에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뿐만 아니라 지금은 조수미의 한국어 노래도 음반으로 나와 있습니다.(한국어 가사는 소설가 신경숙이 번역했고, 소개한 가사가 그 번역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의 대중 가수로 허스키한 저음이 매력적인 하리스 알렉소우(Haris Alexiou)의 애환이 가득한 노래가 호소력이 있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