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 Alain Barriere의 'Un Poete'

by 밤과 꿈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 시인의 시 '조그만 사랑 노래'의 전문입니다. 대학 시절에 무척 좋아했던 시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대입하여 이해했었던 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가 수록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78년이고, 내가 대학교를 다닌 때가 1980년대 초였으니까 약간의 편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는 가히 '시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시의 창작이 활발했던 때였습니다. 1980년의 광주 민주화 항쟁에 이어 제5공화국이 시작된 때로 반시, 오월시, 시운동 등의 동인지가 무크(비정기 간행물)의 형태로 활발하게 출간되었고,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민중시가 등장, 시의 저변이 확대되기도 했었습니다. 시문학이 소설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문학 경향은 아무래도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유신 독재라는 억압의 시대를 금방 벗어난 사람들에게 제5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독재의 등장은 좌절이었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시대의 반복 앞에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970년대에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문제작을 내놓았던 우리의 소설 문학이 1980년대에 들어서 이에 필적하는 문제작을 배출하지 못하고, 우리 문학은 시의 형태로 시대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이의 극복을 노래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지점에서 만나서 아프게 사랑했던 시가 바로 황동규 시인의 '조그만 사랑 노래'였습니다. 물론 황동규 시인은 참여 문학을 표방했던 시인도 아니었고, 이 시의 창작 동기에 대하여 시대적 상황의 연관을 언급한 바도 없지만 나는 이 시를 1970년대 말의 시대적 억압에 대한 시인의 감수성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도 1970년대의 시대적 억압이 지속되었기에 이 시의 감수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나 "길 문득 사라지고"와 같은 구절에서 단절되고 통제된 시대를 떠올리고,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순수의 땅, 그러나 지금은 억압으로 움츠린 땅에 차마 눈조차 내려앉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현실마저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사랑했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많은 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동규 시인의 이 시만큼 나에게 감동을 안겼던 시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보다 직설적으로 시대를 말했던 시들의 가슴 벅찬 구호는 언젠가 허무가 되어 산란하기 일쑤였습니다. 오히려 이 시와 같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부끄러움까지도 외면하지 않는 감수성이 그 시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와 혁명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은 많지만 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섬세하면서 감도가 뛰어난 감수성은 한 인간의 높은 정신성이나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하여 예민하게 작동하기에 어떤 형태, 어떤 주제로든지 시를 쓴다는 것은 바로 무엇인가에 시인이 참여하고 간섭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선우 휘와 신동엽에게서 시작되어 한동안 지속되었던 문학의 순수와 참여 논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행위가 자족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시집을 내고 독자의 공감을 구하는 것이 시작의 이유 중 하나라면 시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가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시인은 숙명적으로 자신의 영혼에 자해를 가하는 고독한 존재가 아닐까요.


프랑스의 상송 가운데 이런 시인의 존재를 말한 노래가 있습니다. 알랭 바리에르(Alain Barriere)가 부른 '시인(Un Poete)'이라는 노래가 그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펄 시스터즈의 멤버 배인숙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습니다.

긴 노래로 그 가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네

이를 악물고 삶을 살아가며

모든 것을 쏟아내기 때문에

거짓과 가식들을 비웃으며

시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네

(중략)

시인도 때때로 죽기도 한다네

그의 장례식은 조문객도 없이

그저 친구와 친척 몇 사람뿐

지체 높은 사람에게 알리지도 않고

시인도 때때로 죽기도 한다네

유언장을 찾을 수도 없이

그럴듯한 상속인도 없이

홀로 삶의 동반자도 없이

시인도 때때로 죽어간다네

(중략)

시인은 참 성가신 존재라네

분별력도 없이, 작은 불의에도 불끈하며

어리석음과 사악함, 권력에 맞서면서

(중략)

추방과 고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쏟아내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시를 쓴다네


시인은 정말 오래 산다네

(중략)

그의 수많은 아이들이 해마다

겨울, 그리고 봄에 태어난다네

선지자의 영광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정말 오래 산다네


마지막 소절에서 노래하는 시인의 생명은 시인의 문학적 생명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겨울과 봄에 태어나는 그의 아이들은 시를 뜻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시인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면서 시를 찾아가는 방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시인을 선지자에 비유하고 있으니 세상 어디에서나 시인은 선택받은 존재인가 봅니다. 그만큼 시인이 짊어진 십자가도 무거운 것이겠지요.





독일 ariola records 발매 싱글 음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3SVaSLt0x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