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지인의 아들 혼사에 다녀올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밤을 지새우고 어제 오전까지 그치지 않고 내렸습니다. 교회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어제 하루 마음조차 눅눅할 뻔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낮잠을 청하여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에 다시 가녀린 빗줄기 소리를 듣습니다. 한밤 중에 홀로 듣는 빗소리가 좋습니다. 마치 오래된 LP판의 소리골을 스칠 때 나는 잡음처럼 내 마음을 긋는 빗소리가 정겹습니다.밤의 적요를 틈타 조용하게 내리는 봄비에 어울리는 노래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습윤한 기후 탓인지 비와 관련한 노래는 우리 가요에 좋은 노래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제처럼 조용하게 비 내리는 날이라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딱 어울리는 노래일 것입니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서 1970년대라면 박인수의 '봄비'를 놓칠 수 없습니다. 소울 필이 가득한 박인수의 절창은 지금 들어도 매력적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이은하의 '봄비'나 채은옥의 '빗물'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노래로 기억됩니다. 1960년대의 노래로는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가 생각납니다. 이 노래가 표현하고 있는 1960년대의 정서를 좋아합니다만 이 노래를 들으면 "왜 트로트를 듣냐"라고 딸이 질색을 합니다. 음악을 듣는 감동의 크기는 반드시 그 음악의 질적인 수준에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순절을 지나고 있는 지금에 가장 감동적인 음악이라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꼽게 되겠지만 사순절이라고 예수의 생애만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감동은 삶의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처럼 어둠이 짙은 한밤 중에 비 내리는 날이라면 유독 생각나는 노래로 현경과 영애라는 여성 듀오가 부른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기인 두 사람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이 대학 선배인 김민기가 이 노래를 작곡, 두 사람에게 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직업적으로 노래할 생각이 없었던 두 사람은 1974년에 기념으로 이 노래가 포함된 한 장의 LP를 남긴 채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었습니다.
그러나 김민기의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에 더하여 현경과 영애, 두 사람의 순수한 음색이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딱히 비를 주제로 한 노래는 아니지만 1절의 가사에 비를 언급해 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사가 지닌 사유의 깊이를 생각하면 항상 강은교 시인의 '빗방울 하나가. 1'이란 시를 연상케 됩니다.
빗방울 하나가
창틀에 터억
걸터앉는다
잠시
나의 집이
휘청ㅡ한다
짧지만 울림이 상당한 시인데 '아름다운 사람'이란 노래의 울림도 이 시에 못지않습니다.
이 노래는 한 장의 LP 만을 남기고 시대 상황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하지 못했던 김민기가 1993년에 넉 장의 LP와 CD로 남긴 음반 속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